“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우 우 우…” 이 노래만 들으면 북녘 땅에 두고 온 고향생각으로 눈물이 난다. 그래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으면서 훌쩍 거린다 어린애 같이,... 정지용이 1927년에 발표한 시에다가 김희갑이 곡을 붙이고 이동원 박인수의 듀엣 열창으로 크게 히트한 “향수”(鄕愁) 의 초반부 가사 내용이다.
노래 한 곡 때문에 이렇게 빠져 버리기는 난생 처음이다 아마도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화 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헌데 그게 지금 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장장 70년 세월의 길고 혹독했던 엄동설한이 녹아내리고 마침내 남북이 하나되는 그날이 오면 제일먼저 달려가 보고 싶은 곳, 내가 유소년기를 보냈던 평안북도 신의주시 미력동이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 모습 다시 볼 것 만 같은 가물가물 한 그리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향수 때문이다.
일찍이 남편 여의고 청상과부로 살아온 어머니가 유복자인 나를 누구보다 더 잘 키워야겠다는 강인한 의지 아니고서야 어찌 신의주에서 만주 탄둥(安東) 중국만철병원까지의 먼 50리길 압록강 철교를 기차로 출퇴근할 수 있었겠는가, 아들의 입학 적령기에 감히 일본학교를 넘봤을 정도로 용감무쌍 했던 것도 그 탓이었지만,... 결국 보기 좋게 낙방한 나의 맥 빠진 손을 이끌고 어머니가 집사로 봉직하던 신의주 제3장로교회 부설 삼일학원에 데려다 주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무지렁이 신세가 될 뻔 했었는데,...
압록강 다리 밑에서 첨벙대고 물 빠진 가을볏단 사이에서 참게 잡으며, 비만 오면 발가벗은 채 뒹굴며 축구로 엉겨 붙었던… 수철이, 영식이, 덕만이, 그리고 그 많은 개구쟁이들… 통일이 되면 백두금강보다 고향에 먼저 가고 싶어하는 실향민들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 우 우…”
<한성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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