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캠핑을 계획한다. 준비 과정이 고되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캠핑은 은근한 낭만과 매력이 있는 여행이다. 하지만 몇 해 전 예약도 어렵다는 요세미티 캠핑장에서 우리 가족은 최악의 캠핑, 이름하여 ‘머릿니와의 전쟁’을 펼치고 돌아와야 했다.
“얘 머리가 왜 이래?” 언니가 텐트 안에서 딸의 머리를 묶다가 이리저리 살펴본다. 뭔가 수상하다. 살아있는 벌레가 머리카락에 붙어 있다. 빠른 속도로 튀어 옆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날파리인가? 머리카락을 뒤져 보던 언니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바로 ‘머릿니’로 추정되는 생물체였다. 방학 전 조카의 학교에서 온 머릿니 안내문에 “요즘도 머릿니가?” 하며 무시했는데… 캠핑장에서 언니와 나는 머릿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박3일간 밥먹는 시간 빼고 하루 온종일 이를 잡았고, 서캐의 부화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차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길 때도 우리는 파라솔 그늘 아래서 묵묵히… 조카는 울며 불며 놀고 싶어 발버둥을 쳤지만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라 머릿니 앞에서 자비란 있을 수 없었다. 머릿니와 서캐는 아름다운 경관에 눈을 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캠핑 내내 머리카락을 뒤지고 또 뒤진 끝에 드디어 ‘머릿니 소탕작전’을 마무리했다.
80년대 국민학교 시절, 언니와 나는 학교에서 머릿니를 옮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방바닥에 넓게 편 하얀 종이 위에 내 머리카락을 풀어 촘촘한 나무 참빗으로 두피부터 싹싹 빗어 며칠에 걸쳐 머릿니 잡던 생각이 난다. 한가닥 한가닥 서캐까지 샅샅이 뒤져 밤 늦게까지 살충작전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야흐로 21세기. 세계 최고 부자 나라, 세계 제일 강대국,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미국에서 머릿니가 웬말인가. 하와이행 비행기 안에서 딸의 머릿니를 발견하고 여행 내내 이를 잡고, 한국서 방문한 시어머니가 손녀에게 머릿니를 옮은 며느리의 이를 잡아준 이웃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현대의학도 속수무책이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낱 미물이라지만, 머릿니라는 미물 중의 미물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우리를 보며 미물의 위용(?)을 깨닫는다. 그래도 또다시 여름 캠핑이 기대된다. 찌든 일상을 잠시라도 벗어나 대자연 속으로! 전쟁 없는 캠핑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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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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