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88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 서울 지국장 시절 카니 강(가운데) 기자와 당시 LA 타임스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강형원(맨 오른쪽) 기자, 원로 한인 언론인 이경원씨 등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강형원 기자의 페이스북]
한인사회의 자부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카니 강(한국명 강견실) 전 LA 타임스 기자가 지난 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주류 언론의 대표적인 1세대 한인 기자로 명성을 떨친 고인은 44년간 LA 타임스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일선 기자로 한인 사회의 목소리를 미 주류사회에 전달하는데 힘써 온 미주 한인 커뮤니티의 산 증인이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유력 언론지인 이그제미너 서울 지국장을 거쳐 1992년 4.29 폭동 당시 LA 타임스로 옮긴 고인은 억울한 한인 사회의 피해를 주류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1942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가족들과 북한을 탈출에 성공한 뒤 일본 오키나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고인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온 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국제학교 재학 당시부터 영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고인은 미주리대 신문학 학사와 노스웨스턴 신문학 석사를 거쳐, 미주리에서 정치 및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지난 1968년 서울외대 조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으며, 1977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자로 입사한 뒤 이그제미너 사회부 차장, UPI 통신 기자,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 서울 지국장을 거쳐 LA 타임스로 옮겼다.
지난 2008년 은퇴 전까지 44년간 일선 기자로 활동하며 주류언론의 대표적 1세대 한인기자 족적을 남긴 고인은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서울 지국장으로 있을 때 한국인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사측의 지시에 맞서 역으로 개고기 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다룬 기사를 쓴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한인사회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
고인은 은퇴 후에도 소설 등 저술활동을 계속해오는 등 후배들을 위한 선배 멘토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으며, 북한에 기독교 학교를 짓는 것기 위해 풀러 신학교를 졸업하는 등 목회자 수업을 받던 중 췌장암 투병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19일자 LA 타임스도 강 기자의 별세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강씨는 샌프란시스코 가족묘역에 묻힌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