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2월, 덴마크 출신의 20세 이민자가 뉴욕에 도착했다. 무일푼인 그가 가진 것이라곤 자전거를 만들고 싶다는 야망 뿐이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 린츠에 거주하는 알로이스와 클라라 히틀러의 아들은 열 살이었다. 히틀러는 화가를 꿈꾸었으나 자신의 야망을 뒷받침해줄 재능이 없었기에 결국 다른 직업을 찾게 된다.
덴마크 출신 이민자와 오스트리아인은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그들의 삶은 현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교차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이 제한된 이유는 거의 동등한 힘을 지닌 두 적대국들로부터 글로벌한 도전을 받고 있는 미국이 적절한 방위산업기반을 갖추지 않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1930년대말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즈음 미국의 방위산업은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세계만큼이나 암울한 상태였다. 현재 허드슨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사학자 허만은 2012년에 발간한 그의 흥미진진한 책에서 미국이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생산능력을 눈부시게 끌어올려 서구문명을 구했는지 말해준다.
1937년에 이르러 덴마크 이민자인 윌리엄 크누센은 공장의 일선 노동자에서 자동차 산업의 정점에 해당하는 제너럴 모터스 사장 자리에 올랐다. 1940년 5월28일,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함락되자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에게 생산 관련 업무를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단조로운 직무 설명은 크누센에게 주어진 임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에게 부여된 실제 임무는 당시 네덜란드 정규군과 비슷한 규모였던 미 육군과, 작고 무기력하며 기술적으로 정체된 나머지 군 전체를 미국의 막강한 산업력을 과시하는 군대로 탈바꿈하라는 것이었다.
1940년 FDR이 연 5만대의 비행기 생산을 공언하자 히틀러는 코웃음쳤다. (당시 미 육군 항공부대가 보유한 전투기는 대략 1,700대로 거의 대부분이 노후한 소형 기종이었다.) 히틀러는 “미인대회 여왕, 백만장자, 멍청한 음반과 할리웃을 빼면 미국은 그야말로 빈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조롱했다. 허만은 “과연 그의 말이 맞는지 히틀러는 곧 알게 된다”고 썼다.
1945년까지 미국의 화이트칼러 기업체의 임원과 엔지니어 및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은 블루칼러 노동자들은 연합군이 사용하는 모든 전쟁물자의 3분의 2를 생산했다. 탱크 8만6,000대, 트럭 250만대, 항공기 28만6,000대, 해군함정 8,800대, 상선 5,600대, 철강 4억3,400만톤, 기관총 260만개, 탄환 410억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허만에 따르면 위험한 장비와 시뻘겋게 달구어진 리벳으로 가득찬 급조된 일터에서 생산작업은 미친듯한 속도로 진행됐고 “1942~43년 사이에 군수업체에서 죽거나 다친 근로자들의 수는 같은 기간 전선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미군 수를 20배 이상 웃돌았다.”
1933년, 미국 철강산업의 조강 역량은 20년래 최저점에 놓여있었고 선박 건조산업은 매월 4개의 선박을 만들어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1939년말, 10년 가까이 피츠버그에 거주 중이던 한 여성이 근처 언덕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를 보고 신고했다. 그녀의 911 긴급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화재가 아니라 공장 연기”라고 말했다. 거인은 그렇게 깨어나고 있었다.
지칠줄 모르는 크누센이 전반적인 분위기와 속도를 정한지 불과 몇 달 만에 미국의 산업인들은 갯벌과 빈들판에 조선소와 철강공장을 세웠다. 그로부터 불과 4년 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리치먼트 조선소는 747척의 선박을 조립해 진수했다.
허만은 이를 ‘자발적 질서’의 산물이라며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유연한 전시 생산체제였다”고 평가했다. 이런 ‘산업적 에너지’는 미국 시장경제의 민첩한 적응력에서 나왔다.
오늘날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국가의 군사적 동면을 깨우고 있다. 예들 들어 독일은 이제 세계 4위의 방위비를 갖고 있고, 국방장관의 용어를 빌리자면, 전쟁에 대비한 방위비 지출을 위해 부채제한을 완화했다.
반면 미국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의 조달 속도라면 미국의 탄약 비축량을 우크라이나 지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때까지 7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을 가정한 워싱턴 싱크탱크의 2023 전쟁게임 시뮬레이션에서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재고는 3주만에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시작된 직후인 2022년, 폴란드가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조인트 시스템스 매뉴팩처링 센터(JSMC)에 미국산 에이브럼스 탱크를 ‘대량’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1942년 이래 미국의 장갑차 생산거점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신형 에이브럼스 탱크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JSMC는 “앨라배마 저장고에 보관중인 구형 탱크의 포탑과 해체된 본체를 가져와 재조립한다.” 탱크 한 대를 개조하려면 대략 2년이 걸린다. 폴란드는 3년전에 주문한 에이브럼스 탱크 대부분을 아직도 수령하지 못했다. 폴란드는 탱크가 필요하고 미국은 제2의 크누센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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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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