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보단 돼지가 낫지.”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의 대사다. 1차 세계대전에 파일럿으로 참전했던 그는 인간 존재에 환멸을 느껴 돼지가 됐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인간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고 집권한 뒤 인간 못잖게 타락하는 메이저 영감, 나폴레옹, 스노볼도 돼지다. 왜 돼지로 풍자했을까. 이른바 ‘인간다움’과 가장 거리가 먼, 지저분하고 미개한 동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 인간은 돼지를 식재료로 착취하고 존재 자체를 비하한다. 돼지꿈을 꾸면 로또를 사고 돼지머리에 절하며 대박을 빌지만, 그때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는 돼지의 말뜻엔 ‘욕심 많고 미련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다. 속담 “돼지는 흐린 물을 좋아한다”는 ‘더러운 것들끼리 사귀기를 좋아한다’는 의미이고, “돼지도 낯을 붉히겠다”는 뻔뻔한 사람을 비난할 때 쓴다.
■ 돼지는 억울하겠으나, 사람을 돼지에 빗대는 건 모욕이다. 18세기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군중을 “돼지 같은 무리”라 칭했다. 일제도 조선인을 돼지 취급했다.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에서 오사카로 돈 벌러 간 10대 소녀들은 ‘조선의 돼지’라 불리며 일본인이 버린 돼지 내장으로 연명한다. 돼지란 뜻의 영어 ‘Pig’는 미국에서 경찰관 멸칭이고, 프랑스어 ‘Cochon’은 ‘추잡한 놈’이다. 돼지만으론 모자랐는지, 한국 엘리트들은 개돼지를 대중을 낮잡는 말로 쓰곤 했다. 2016년 교육부 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대표적이다.
■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고기 먹은 것 숨기고 된장찌개 영상 올렸다’고 비방하는 해괴한 분들이 있다. 부처님 말씀 중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가 있다”고 SNS에 썼다. 가족들과 비싼 소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된장찌개 사진만 올린 것을 위선이라 꼬집은 이들을 겨냥했다. 꽃등심 사진을 올렸다 해도 욕할 사람은 욕했을 것이다. 드러난 건 조 전 장관의 넓지 않은 도량이다. 스스로를 무결한 피해자 위치에 두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돼지로 만들어버려서야 어떻게 큰 정치를 하겠나.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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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설위원이 윤 석렬 김 건희 등등 에게도 이런 논설을 한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네! 공정한척 하는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 나 경원이나 한 동훈에 대해 쓴 적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