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연 시작에 앞서 김영기 교수와 베르트렁 르노 박사가 인사하고 있다.
“샤틀레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중심인물로 당시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성의 과학적 기여를 보여줬다. 그녀의 연구와 저작은 이후 여성의 교육과 과학 분야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포토맥 포럼(회장 이영묵) 초청 특강에서 베르트렁 르노(Bertrand Renaud) 박사는 ‘에밀리 뒤 샤틀레(Emilie du Chatelet): 계몽주의의 찬란한 불꽃’을 주제로 강연했다. 설악가든 식당에서 9일 열린 특강에서 르노 박사는 주강사, 부인 김영기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는 보조설명자로 나서 40여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샤틀레는 18세기 프랑스의 여성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보조 및 주변 존재라는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어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던 선구자적 인물이다.
르노 박사는 “20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그 유명한 방정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전세계적으로 열렸다. PBS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샤틀레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적 영향을 준 과학적 선구자였으며, 움직이는 물체의 법칙이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e~mv2)을 최초로 입증한 인물이라고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샤틀레의 업적은 이 어마어마한 역사적 통찰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샤틀레는 뉴턴이 1687년에 라틴어로 쓴 세 권의 난해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발전시키는 번역에 매진하며 세상에 널리 알려 19세기 프랑스의 과학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했다고 강조했다. 또 한때 볼테르의 연인으로 볼테르에게 근대 과학을 가르쳤고, 볼테르의 중요한 저작 4권은 사실상 샤틀레와의 공동 작업이었다고 부연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프랑스 계몽주의의 문을 열고 근대 과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
르노 박사는 “사후 남성우위사회에서 그녀의 업적이 지워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샤틀레는 다재다능한 천재였으며, 너그럽고 대담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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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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