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죽어서 묻히게 될 묘지에 오후 한나절 앉아 본 경험이 있습니까 ? “ 당연히 해 봐야 될 일을 왜 안하고 있느냐고 묻는 재촉 성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잘한 일상 생활에서 남다른 의미를 발견해 내는 미국 작가 “로버트 풀검”이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 (원제: FROM BEGINNING TO END) 라는 책에서 자기가 묻힐 묘지 위에 간이 의자를 피고 앉아 찍은 사진과 함께 던지는 첫 물음이다.
자신의 무덤 위에서 한 나절을 보내며 그는 강열한 체험을 했다. 난데없이 굵직굵직한 줄기, 즉 출생, 어린 시절, 사춘기, 결혼, 직장생활로 이어진 나날과 오늘, 그리고 앞날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삶의 유한성과 마주친 자신을 본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아니 발 밑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게될까 하는 물음이 솟구친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인생에 뜻을 주며 무엇이 뜻 있는 실존을 방해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해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성공과 실패를 깨닫게 된다. 삶의 틀과 때, 그리고 흐름을 알게된다. 여러분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1909년 프랑스의 인류학자 “반 즈네”는 통과의례란 새로운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겪는 탄생, 성년, 결혼, 사망은 물론 생일파티, 동창회, 등 사회생활을 통해서 겪는 자잘한 모든 일들을 지칭하였다. 대부분의 통과의례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맞지만 유독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의례로 일생의 마지막에 오는 죽음도 있다. 그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일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과장된 말일까?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 될 한가지 일이 있다. 자신이 묻힐 한평 남짓한 자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롱아일랜드 전 지역은 토질이 거의 비슷한 질이 좋은 모래층으로 되어있다. 땅 넒은 미국 땅에, 좋은 묘자리 하나를 준비한 후에 한번 누워본다면 과연 무엇을 느끼며 생각하게 될까?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주는 것이 죽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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