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원에 갔다. 아이들 기차를 기다리며 줄서 있는데 두 살난 아들이 바지춤을 내리고 소변을 보려 했다. 공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기저귀도 안 가져왔고, 급한 마음에 공원 화단에 들어가 소변을 시켰다.
지나가던 미국 아주머니가 몹시 불쾌한 감정을 표했고 줄에 있던 미국 할머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다고 그 아주머리를 탓했다.
집에 와서 다섯살 난 딸아이에게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빠는 다른 사람이 우리 화단에 피피하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다섯살짜리였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이곳 사고(思考)였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필히 기저귀를 준비하고 꼭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그 날의 나의 행동을 그 미국 아주머니 대신 딸에게 사과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는 그들만의 관습과 문화를 형성하며 먼저 정착하여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기에 늦게 이곳에 온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혹시 된장찌개 냄새를 싫어하면 양치질도 해 주어야 하고, 집에 향수도 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먼저 정착한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의 행동이어야지, 된장찌개 자체를 부끄러워해서는 안되고 더우기 반만년 그것을 먹어왔던 우리 조상,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나무에는 뿌리, 줄기, 그리고 잔가지들이 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잔가지라면, 우리의 역사는 뿌리요, 그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민족정신은 즐기다. 세상살이에서는 편법도 휘어질 수도 있지만 우리의 역사, 민족정신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학 백두산 천지처럼 웅장하게 뻗어가야 한다.
이스라엘은 민족의 반역자가 어느 곳에 있던 몇 명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반역자를 조국의 법정에 세워 역사의 기록에 남긴다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 기록을 위해 몇 명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 현실의 눈으로 볼 때는 소위 ‘손해보는 장사’겠지만 그것이 민족의 정기를 살리는 일이요, 우리 후손에 물려줄 가장 큰 자산인 것이다.
일일문화권으로 다가온 세계, 우리 한 민족은 세계인과 서로 서로의 관습, 문화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 때로는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우리의 기호식품을 조심해줄 필요는 있겠으나, 우리들의 후손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조상은 당장 눈 앞의 이익 보다는 떳떳이 살기 위해 더 노력했었다고.
요즈음 나는 저 만주를 호령했던 광개토왕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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