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꺼벙이’가 월드시리즈에 섰다.
한인 최초로 꿈의 구연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르는 김병현(22)은 전남 광주가 고향으로 광주 수창초등학교, 무등중학교, 광주일고, 성균관대학교를 거친 광주 토박이다. 1979년 1월19일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하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애당초부터 잠수함 투수는 아니었다. 정통파 오버핸드로 시작했지만 무등중 3학년 때 최양식 감독의 권유로 언더핸드스로로 바꾼 것이 투수로서 일대 전환점이 됐다. 김병현이 본격적으로 스타의 재질을 보인 것은 광주일고 시절. 1년 선배이자 현재 뉴욕 메츠의 마이너리그 유망주인 서재응과 막강의 피칭스탭을 구축, 광주일고를 전국최강으로 이끌며 일약 초고교급 특급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미 국내에서 스타재목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김병현이 국제적인 스카웃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9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때 한국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부터. 하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확실하게 BK의 매력에 사로잡힌 것은 97년 7월 애리조나 투산에서 열린 한·미 국가대표대항전 때다. 당시 김병현은 6⅔이닝 동안 삼진 15개를 잡아 스카우트들을 놀라게 했다. 김병현은 이어 열린 제33회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최강 쿠바를 상대로 호투, 확실한 이미지를 심었다.
김병현을 놓고 메이저리그의 스카웃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박찬호(LA 다저스)와 함께 출전한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김병현은 중국전에서 6이닝동안 8타자 연속 삼진을 포함, 삼진 12개를 잡고 퍼펙트를 기록하는 환상피칭을 선보였고 당장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등 10여개 구단들이 모시기 경쟁에 나섰는데 결국 당시 신생팀으로 투수재목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D백스와 사인했다. 당시 치열했던 스카웃전을 반영하듯 계약금 225만달러는 메이저리그팀과 계약한 한국선수중 최고액.
1999년 3월 D백스와 사인한 김병현은 3월말 미국으로 건너와 더블A 엘파소에서 메이저리그를 향한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다. 한수아래 더블 A 타자들을 어린애 다루듯 한 김병현은 단 2주만에 트리플 A로 뛰어올랐고 여기서도 상대가 없자 미국에 온지 불과 2달만에 당시 메이저리그 최연소선수(만 20살)로 메이저리그로 초고속 데뷔했다. 5월29일 뉴욕 셰이스테디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진 김병현은 거포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첫 등판을 깔끔하게 마무리했고 이후 부상(99년 중반)과 체력저하(2000년 후반)로 인해 한때 고전하기도 했으나 2000년 전반에는 일약 ‘BK선풍’을 일으키는등 확고한 메이저리그 스타덤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이번에 랜디 잔슨-커트 쉴링과 함께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끄는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하며 당당히 최고 무대에 도전장을 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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