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김병현(22)을 져버리지 않았다. 절망을 모르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전사들이 끝내는 ‘양키스의 마법’을 깨고 김병현의 악몽을 씻어줬다.
가져다 붙일 수식어가 모자라는 월드시리즈 역대 최고의 명승부. 끝에는 아무리 짓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다이아몬드백스의 집념이 뉴욕 양키스를 통산 27번째 우승의 문턱에서 끌어내렸다.
김병현이 이틀연속 9회말 2사후 동점 홈런을 맞는 통에 양키스테디엄에서 내리 3게임을 1점차로 졌던 다이아몬드백스는 밥 브렌리 감독이 "홈구장에 돌아가 양키스 마무리전문 마리아노 리베라를 눕혀 똑같은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던 복수 시나리오를 그 대로 이행했다. 거꾸로 양키스를 대역전극의 제물로 만든 것이었다.
랜디 잔슨을 앞세운 6차전에서 15대2로 압승, 시리즈 전적 3승3패 동률을 이룬 다이아몬드백스는 4일 애리조나 뱅크원볼팍에서 속개된 2001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8회초 1대2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카즈히로 사사키(시애틀 매리너스)를 굿바이 홈런으로 울렸던 선두 타자 알폰소 소리아노가 커트 쉴링의 투구를 통타, 1대1 균형을 깼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쉴링은 다음타자인 스캇 브로셔스를 삼진으로 잡았다. 그러나 이어 핀치히터로 경기에 투입된 데이빗 저스티스에 중전안타를 맞아 7⅓이닝만에 마운드에서 매려와야 했다. 투구수 103개, 6안타, 포볼 없이 9삼진. 통한의 2실점.
"너는 나의 영웅이다. 이 것 때문에 절대지지 않는다." 브렌리 감독은 이렇게 쉴링을 격려하며 공을 받아 5차전 선발투수였던 미겔 바티스타에 넘겨줬다. 바티스타는 곧 지터를 상대로 더블플레이에 딱 좋은 3루 땅볼을 유인해 냈지만 2루수 크렉 카운셀이 글러브에서 공을 제대로 꺼내지 못해 2루 포스아웃에 그쳤다.
내일은 없다. 브렌리는 지체없이 하루전 승리투수였던 랜디 잔슨을 불펜에서 불러냈다. 양키스는 왼손타자인 폴 오닐을 척 나블락으로 갈아치우며 맞섰지만 1점을 추가하는데는 실패했다. 단순한 외야플라볼 아웃.
양키스는 8회말 클로저 마리아노 리베라에 공을 넘겨주며 마지막 2이닝을 부탁했다. 포스트시즌 방어율이 0.70이었던 리베라는 김병현처럼 8회말은 문제없이 막아냈다. 그러나 9회말 선두타자 마크 그레이스에 안타를 맞은 뒤 실책을 범해 무사 1, 2루의 위기에 몰렸다.
다이아몬드백스는 제이 벨이 희생번트에 실패하며 주춤했지만 톱타자 토니 워맥의 2루타로 동점을 이룬 뒤 1사 만루 챈스에서 루이스 곤잘레스의 중전안타로 창단 4년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김병현이 그 모든 것을 용서받은 해피엔딩까지 겸한 월드시리즈 사상 최고의 명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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