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만 지나면 나이를 또 한 살 먹는다. 속절없이 나이만 많아지는 것을 반겨할 노인은 없을 것이다. 필자도 나이 들면서 노인이면 누구나 부딪치게 마련인 건강과 노후 문제 외에 마음고생이 한가지 더 생겼다. 나는 과연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는 노인인가라는 의구심이다. 그렇지 못한 노인들을 적지 않게 봐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꼽혀왔다. 특히 노인들을 깎듯이 공경한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동네에서 웃어른 대접을 받는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은 맨 먼저 마을 경로당에 찾아가 노인들의‘엔도스먼트’를 받아야한다. 안 그러면 버릇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낙선하기 십상이다. 한인사회에서도 노인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요즘 세태는 많이 달라졌다. 평등사회인 미국에서 성장하고 공부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젊은이들의 노인 존경심이 예전만 못하다. 할아버지들은 가부장으로서의 권위가 간 곳 없고 할머니들은 십중팔구 베이비 시터로 전락한다. 자식들과 따로 살기 원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근본적 원인이 젊은이들의 존경심 상실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가운데 한국 청소년들의 어른 존경심이 가장 낮다고 한다. 유엔 아동기금(UNICEF)이 17개국의 9~17세 청소년 1만여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 청소년들은 불과 17%만이 어른을 존경한다고 대답했다. 몰개성적 교육풍토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이 원인으로 꼽혔다. 어른들이 말만 앞세우고 서로 편갈라 싸우기 바쁘면서 청소년들의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옛날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모든 사람이 좋아하면 어떻습니까?”“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공자는 대답했다.“모두가 싫어하면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그 또한 옳은 일이 아니라며“착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논어의‘자로’편에 나오는 이 얘기는 어느 누구도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존경은 우러러 받드는 것이다. 영어로 존경을 뜻하는‘리스펙트(respect)’는 라틴어의‘레스피세레(respicere)’서 왔다. 문자 그대로‘다시 본다’는 뜻이다. 존경스런 사람은 다시 한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리스펙트의 어원을 들어 에리히 프롬은 저서‘사랑의 기술’에서 상대방 고유의 개성에 눈길을 돌리는 능력이 곧 존경이라고 말한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수치스러워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역설적으로 갈파했다. 수치와 선악을 판별할 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존경심의 바탕으로 본 점에서 공자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인간이 지향해야할 이상적 인격체로 공자가 강조한 군자야말로 만인이 존경할 수 있는 인간상이다. 군자는 번드레한 말보다 묵묵히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강직하고 의연하며 소박하고 말을 아끼고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룰 줄 알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특성이다.
모든 어른이 군자일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 청소년단체 연합회가 어른들이 존경받는 사회 만들기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이다. 예절 운동, 언어순화 운동과 함께 부모와 교사 등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의로운 사람이 존경받고 대접을 향유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지도층이 솔선할 것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동포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캠페인일 듯하다.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노인들이 미국사회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미국 문화도 더 과감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와 사고방식에만 집착하는 노인들은 우리 1세들 눈에는 전통문화의 지킴이로 존경의 대상이지만 감수성과 정의감이 예민한 젊은이들 눈에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고집불통으로 무시 또는 멸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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