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지음
창작과 비평사 펴냄
삶을 바라보는 노작가의 따스한 시선
작가 박완서(71)씨의 글은 호흡이 아주 짧지는 않다. 그렇지만 읽어 내려갈때 숨이 차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뛰어난 솜씨와 글속에서 우러나오는, 세월과 나이를 무색케 하는 순수한 감성의 힘이라 여겨진다.
문단의 원로로서 후배 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노작가가 지난 몇 년간 써온 산문들을 묶어 ‘두부’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책속에는 23편의 산문이 들어 있는데 나이가 들어 가는데 대한 단상들과 고향 개성, 그리고 고향을 닮았다는데 끌려 집을 짓고 살아가는 아차산밑 아치울에 관한 풍경들을 두부처럼 담백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누군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달가울까. 그러나 작가는 ‘노년’이라는 제목의 글속에서 노년이 안겨주는 역설적인 자유함을 피력한다. 그는 “이제 놓여나기 위해, 가벼워 지기 위해”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늙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이가 좋다고 말한다. 볼꼴 못볼꼴 다 봤고 한번 본 것 두 번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젊어 지고 싶지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함때문인지 수십년째 안고 사는 성인병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조차 따뜻하다. “대개 성인병의 내방을 받는 것은 제몸 안돌보고 길러낸 자식들이 제각기 거들먹 거리며 부모슬하를 떠날 무렵이다. 애면글면 돌보고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없어진 허탈감을 메워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몸이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다보니 병과 친해지지 않을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렇지만 그 고백에서는 어쩔수 없이 쓸쓸함이 묻어난다. 떨어지는 마당의 살구나무 잎새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몸하고 저렇게 소리도 없이 사뿐히, 뒤돌아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책의 제목이 된 ‘두부’라는 글은 작가가 1998년에 쓴 것이다. 이 글속에서 작가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출옥할 때 개선장군인양 으스대고 연희동에 현수막까지 걸린 모습을 보면서 “왜 모든이들이 감옥에서 나올 때 먹는 두부를 저 사람만 먹지 않고 저리도 당당한가”라며 분노를 드러낸다.
못난 인생들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두부 한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느끼게 되는 그 모멸감을 피해가는 전대통령의 태도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으로 질타하고 “무미의 두부속에 쓴맛이 숨어 있다는 걸 맛본적이 있는 권력자가 한사람도 없기 때문에 사랑받는 평범한 이웃으로 돌아온 권력자 또한 한사람도 없는게 아닐까”라고 작가는 묻고 있다.
그러나 4부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의 백미는 작가가 둥지를 틀고 사는 아차산 밑 아치울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제2부 ‘아치울 통신’이라 생각된다.
‘아치울 통신’ 11편의 글속에는 자연과의 교감속에서 작가가 깨닫게 된 지혜들이 잔잔히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여전히 푸근한 것은 물론이다.
작가가 훌륭하다는 것은 글의 기교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임을 산문집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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