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서 연인을 떠나보내듯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2002년을 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희죽이 웃으며 2003년 새해를 맞았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마지막 1분 1초까지 가는 해를 전송하고 새해를 알리는 첫 종이 울리자 모두 환호하며 얼싸 안았다.
그렇게 감격해하며 맞이한 새해가 시작되면 연례적(年例的)으로 하는 것이 몇 있다. 새해의 시작을 제일 먼저 맞이하겠다고 일출(日出)을 보러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니 유명한 일출 장소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아마도 가장 먼저 갓 태어난 순수하고 깨끗한 해를 맞이하고, 그 해를 보면서 한 해의 소망을 빌며 꼭 이루어 달라고 기대하고픈 것은 모두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 첫 일출을 보고 난 뒤 새해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따스하고 평안(平安)하다.
내 기억으로 학생시절부터 나는 새해가 되면 커다란 도화지 하나와 빈 노트를 준비하고 새해 달력을 펼쳐 놓고 앉아 일년 열두 달을 써놓고 하루 24시간을 써놓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나름대로 구상하여보곤 했다. 때로는 얼토당토않던 계획들도 많았고 때로는 정말 주요하고 잊지 말아야 할 그런 것들도 있었지만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되어 새해에 그렸던 계획들을 다시 펼쳐 놓고 돌아볼 때면 이룬 것보다는 그렇지 못한 것이 태반(太半)이었다. 어린 마음에 적잖이 실망도 하여보고 더욱 분발하리라 다짐도 하여 보았지만 점점 자라나면서 대부분 못 이룬 것들이 한 해에 이루기에는 너무 무리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목표(目標) 달성도(達成度)를 높이려 조금은 쉬운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곤 했지만 어찌 된 것인지 연말만 되면 매년 그 달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요즘은 새해 계획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꼭 이루어야겠다고 느끼는 것 몇 가지 만 목표로 삼고 중간 중간 이를 점검(點檢)해 나간다. 하지만 다른 때에도 그렇겠지만 새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루어 가는 데에는 참으로 커다란 복병(伏兵)이 하나 있다. 바로 ‘작심(作心) 3일(日)’ 이라는 것이다.
누가 처음 생각해 낸 말인지 참으로 용케 잘 맞아떨어진다. 지금까지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실행해 가는 데 있어서 이 ‘작심(作心) 3일(日)’을 피해나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3일쯤이야 했는데 첫날은 잘 지켜가도 이튿날이 되면 벌써 조금 게을러지기 시작이고 미루게되고 빼먹게 되고 사흘째가 되면 시큰둥해지기 시작하여 정말 나흘째로 넘어가는 것이 몇몇 안돼는 것이다. 이러니 그 누가 한갓 ‘작심(作心) 3일(日)’이라 업신여길 수 않겠는가. 요즘은 소꿉놀이 어린아이들도 ‘하나’ ‘둘’ ‘셋’ 은 다 안다는 데, 명색이 어른이라는 사람이 그 3일 때문에 그렇게 전전긍긍(戰戰兢兢)한다는 것이 아이들이 보기엔 참으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이제 다시 2003년의 새해가 밝았다. 나는 또다시 무엇인가 올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달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지를 향해 정진해 나아가는 나의 삶을 더욱 견고히 하고 싶기에 내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다시 한번 ‘작심(作心) 3일(日)’과 싸워나가고 싶다. 뭐 어떤가. 누군가 나에게 고작 3일도 못 채울 계획을 세우고 또 세우냐고 비웃는다 해도, 새해 달력을 옆에 끼고 빈 노트 하나 꺼내어 놓고 나만의 꿈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런 것이 바로 인생(人生)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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