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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지난해 5월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 타임스스퀘어에 걸려 있는 삼성전자 전광판을 교체하기 위해 뉴욕에 왔었다. 그는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소니의 스파이더맨이 우리 전광판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고 조크했다. 그 무렵 ‘스파이더맨’이 타임스퀘어를 무대로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 영화가 소니 계열의 영화사에서 만들어져 블록버스터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성공비결은 진대제 사장과 같은 CEO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진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스탠포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휴렛패커드, IBM등 미국 유수 컴퓨터 회사에서 연구활동을 한 후 삼성전자 미국현지법인장을 맡았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와 연구를 거친 뒤 삼성전자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구호를 내세워 삼성전자를 오늘날 순이익 면에서 일본의 세계적 기업 소니를 능가하도록 키웠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첫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돼 삼성 전자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스톡옵션 7만주(55억원 상당)를 포기했다.
한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다는 그가 요즘 연일 시비거리에 휩싸여 있다. 첫째, 그의 장남이 이중국적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했다는 내용이고, 둘째는 진 장관이 삼성전자 부당내부거래 민사소송에 연루됐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안은 대통령이 양해함으로써 넘어갔고, 두 번째의 삼성전자 소송건은 법원에서 승소판결이 났다지만 국내에서 더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16년간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삼성전자 사장은 괜찮고, 장관은 안 된다는 발상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얼마 전에 종영한 KBS TV의 사극 ‘제국의 아침’에서 고려 광종은 호족 세력을 꺾고 국정을 개혁하기 위해 후주의 책사 쌍기(雙冀)를 영입한 내용이 나왔다. 쌍기는 광종에게 노비안건법을 건의, 통일 과정에서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풀어주고, 과거제 실시를 제안, 초야의 인재를 관료로 등용토록 했다.
드라마에서 광종이 그를 중히 쓰자 이른바 국내파들이 시기하고, 호족 세력의 견제가 심했던 것으로 그려졌다. 미국 영주권자를 장관으로 하자는데 이렇게 시끄러운데, 고려시대엔 더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 선조는 이미 천년전에 유능한 사람이라면 외국인도 받아들여 공직에 활용했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구한말에도 외국인들을 황실 자문관으로 쓴 적이 있다.
가까운 예로 북한을 보자. 북한이 지난해 신의주 특구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중국계 양빈을 행정장관으로 영입하려 했다. 중국의 방해로 양빈을 데려올 수 없게 되자, 북한은 포항제철 회장을 지낸 한국의 박태준씨를 영입하려 했었다. 폐쇄적이고, 주체사상에 얽매어 있는 북한마저 변화를 추구하는데, 국제 사회에 열려있는 한국에서 공직 기용에 오히려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이다.
진대제 장관에 대한 시비를 보면서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읽을 수 있다. 국제화를 외치면서 외국의 것을 배우고, 외국에 물건을 파는데는 열심이지만, 공직자는 반드시 국적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치판이 싸움질만 하고 있을 때 곧잘 “정치인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막상 정치인과 그 가족의 국적 문제가 드러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여기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한국을 이끌고 갈 훌륭한 사람이라면 굳이 한국 국적자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제에 외국인을 공직에 영입하는 방안을 논의해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전에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을 공직에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슬그머니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좁은 한국에서 인재를 찾기 어려워 외국에서 훌륭한 사람을 영입해야 할 형편에서 능력 있는 한국사람의 국적을 문제삼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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