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 탄핵재판에 회부된 대통령은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었다. 링컨 대통령이 미국의 운명이 걸려있던 남북전쟁을 슬기롭게 지휘해 종전시켰으나 암살을 당한 후 부통령 앤드루 존슨이 1865년에 대통령직을 인계했다. 그리고는 다음해인 1868년 연방의회에서 탄핵을 받는다.
법대로 하원에서 탄핵을 결의하여 상원에 상정, 상원은 탄핵 재판 기관으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런데 이때 단 한 표 차로 존슨 탄핵안은 부결된다. 그래서 존슨 대통령은 미 헌정사상 첫 탄핵 당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벗지 못했어도 자기 임기를 마칠 수가 있었다.
존슨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지면 자기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칙에 굴하지 않고 한 표를 던져 대통령을 구한 그 정치인의 고민을 후에 그 자신도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가 런던 정경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용기의 프로필‘이 라는 책으로 내었다.
앤드루 존슨의 탄핵 사유는 의회 폐회 중 연방정부에 반항하여 싸웠던 남부 10개 주에 대한 전후 처리를 대통령 혼자서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존슨은 원래 문맹의 양복재단사였으나 부인이 글을 가르쳐 대통령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다. 존슨 대통령은 독선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여 엘리트 정치인들의 멸시를 받았고 지지자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링컨의 잔여임기를 채우기 위해 대통령이 된 존슨을 무슨 구실로든 제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탄핵할 수 있는 사유로 헌법은 중범죄 또는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통치결정을 중범죄로 몰아갈 수 있겠는가를 고민한 정치인이 있었기에 존슨은 위기에서 구출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는 주로 비행에 속했는데 상원에서 다수 지지를 못 얻어서 탄핵안이 기각되고 말았다.
클린턴 탄핵의 경우 통치행위가 이슈가 된 것이 아니라 개인행동이 문제가 되므로 공적 임무수행 능력과 개인행동을 분리하는 것에 국민이나 정치인 모두가 고민을 하였다. 또 클린턴이 하류층 백인 출신으로 흑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 것도 한몫을 하였다. 이것이 백인 중산층의 거부감을 자아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정과정에서 과연 몇 명의 정치인이 대원칙을 따라 가는 정치인이 되고자 고민을 했을까. 노무현 통치행위가 싫어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구실로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또 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것과 일맥 상통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배경도 한 이유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 이유가 다분하며 한국 의회가 경솔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긍정적인 면으로 볼 수도 있다. 탄핵의 직·간접적 이유인 선거법 위반, 정경 유착, 뇌물수수, 친인척 관리 실패, 도덕성 부재, 자질 부족, 실책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 정권들과 비교해 볼 때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노무현만 탄핵을 당하고 있는가. 그것은 범죄 증가 통계가 사실은 범죄보고 기법 개선으로 범죄 증가 현상처럼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난 15년간 신장되어온 인권, 언론집회의 자유, 삼권분립, 독립성 제고로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다. 이 민주화 신장과 구태의연한 정치습성과의 괴리가 탄핵이라는 결과로 표출되었다고 본다.
탄핵은 민주화의 과정이다. 탄핵 재판 결과에 따라 한국의 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을 것이다. 민주정치는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일종의 테두리는 있으나 그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끝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 과정 속에 모두가 참여하면서 인내심으로 자주와 타협을 조화할 줄 알아야 한다. 탄핵은 이러한 능력 테스트를 하는 과정이자 그 능력을 키워주는 계기다.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즈노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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