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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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유난히 따르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잘 하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차 한잔 하고 가세요!’ 십여 년 전 예쁜 성당 아줌마 한 분이 집까지 바래다 주고 가실 때 터트린 정치적 외교적 말문이 얼굴에 하나 둘 여드름이 솟아나는 지금에도 변할 줄 모른다. 엄마가 찻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차 맛도 제대로 알리 없는 녀석의 속셈은 차 한잔 마실 때 따라오는, 친구와 놀 시간이 더 많아 진다거나 근엄한 표정의 어른들이 하하 호호 하는 플러스 알파가 좋아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동네에 늘어난 것은 ‘스타벅스’ 뿐인 것 같다.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커피를 좋아하는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다 만들었다는 이 커피숍을 아줌마들은 그냥 별다방으로 부르는데 짙은 녹색의 로고 속 ‘세이렌’ 요정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유혹당해 별일 없어도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 아쉽게 되어 버렸다.
5분 거리마다 하나씩 들어선 별다방의 회장 하워드 슐츠의 경영 방법이 확실히 사람들 사이에 파고든 것 맞다. 베스트 셀러가 된 그의 책 ‘Pour your heart into it’에서 보면 그는 커피 한잔을 파는 것이 아니고 커피에 담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그 소통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세 살배기 아이도 어렴풋이 감지했던 그 분위기를 상품화 해서 성공한 것이다.
서울 강남에 나들이 갔을 때도 별다방은 인기다.
오래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쉬운 데가 별다방이다. 스타벅스가 두부나 새우젓 장사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 재벌과 손잡고 길 좋고 목 좋은 곳에 어련히 알아서 딱 자리 잡고 있으니 동네만 알면 찾기는 십상이다. 예전의 어두 컴컴한 찻집들이나 어항 다방은 온데 간데 없고 세련된 실내 장식의 서구식 찻집이 대부분인 서울에서 Coffee bean~은 ‘콩다방’이라고 별명을 붙여놔서 별과 콩을 오가며 재미나게 사교하고 왔다.
이 세상 차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식물보다 더 많게 차 한잔에는 사람마다 수 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쫓아온 남학생이 건넨 말이 시간 있으면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했을 리 없을 것이고 커피 마시며 주먹 다짐할 일 또한 상상되지 않는다. 차 한잔에 담긴 향기, 손바닥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 그런 것이 추억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억을 외로운 사람에게 대화를 사랑에는 눈길을 주는 그런 마이더스의 손이 되어 버리는가 보다.
토요일 여성의 창 오른 쪽에 <←> 실리는 최정화 선생님의 빛나는 글을 즐겨 읽는다. 매일 어김없이 배달되는 한국 일보지만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하루 이틀 늦어져 구문으로 읽을 때가 많아 좋은 기사를 많이 놓친다. 그래도 내 글이 실린다고 토요일은 아침부터 부산히 챙겨 읽었었는데 그 덕분에 예전에 몰랐던 English for the soul 칼럼의 애독자가 되어 버렸다.
‘영어로 배우는 삶의 지혜’ 블로그도 즐겨 찾기에 등록해 놓고 좋은 글 읽고 음악도 듣고 영어도 배우는 일석삼조를 얻었다. 그렇게 석 달이 훌쩍 지나갔다.
여성의 창을 시작할 때 타이틀이 주부여서 조금은 덜 당당했다고 썼었는데 주부 말고 보너스를 하나 받았다. 한국 일보 고맙구요, 석 달 동안 여성의 창에 기고한 볼품 없는 글들 기꺼이 읽어주신 분들께 무진장 감사 드린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아들 녀석은 아마 맘에 드는 아가씨가 생기거나 친구와 더 있고 싶어질 때면 ‘차 한잔 할래?’ 뭐 그렇게 너스레를 부릴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슬쩍 보이고 싶을 때 ‘차 한잔 할래요?’보다 자연스런 말이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 여성의 창에서 못다한 이야기 ~~ 우리 차 한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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