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날 그 자리에 있었네
아홉 살의 어느 날 밤
때마침
할아버지와 나밖에 없던 집
내 눈앞에서 으으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비틀며, 승하야……
하야…… 무슨 말씀을 하실 듯
하실 듯하지 못하고
고개를 휙, 옆으로 돌리고 만
할아버지
…… (중략) ……
나 그때부터 사로잡혔네
내 죽음의 순간에 대해
아무리 옴치고 뛰어본들
그렇게 꼴딱 숨을 거두게 됨을
알고 말았네 밤마다 꿈을 꾸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병 깊은
얼굴로
고개를 휙, 옆으로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나 그날 이미 죽어보았던 것
그때부터 덤으로 살고 있고
아직도 살아 있네.
이승하(1960~) ‘죽음의 자리’ 일부
‘펄펄하던 마흔 아홉 목숨이 고개 한번 떨구는 것으로 끝이더라’ 어머니께 듣기나 들었을 뿐인데도, 열 한 살짜리 계집애는 죽음이 마냥 두려웠다. ‘나는 절대로 고개 옆으로 안 떨어뜨릴 거야’ 다짐까지 했으니까. 할아버지의 임종을 혼자서 지켜봤다는, 충격에 하얗게 질린 아홉 살 소년의 얼굴과 또 하나의 얼굴이 아프게 오버랩 된다. 자식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봤던, 일곱 살이던 내 동생 얼굴이랑.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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