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나(1978~) ‘입김’ 전문
팔절지만한 창을 스치는
낯선 새 그림자 따라
휘파람 불며 길을 나서요
전깃줄을 이어폰처럼 끼고 흥얼거리는 가로수
어떤 날의 바람은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귀퉁이만 잘근잘근 씹다가
주머니 속에 반짝이는 동전
그 상냥한 음정만 매만지고 오기 일쑤죠
구인 정보지 활자 사이를 기웃거리다
연탄재 꼭꼭 눌러 밟으며 집으로 오는 길
리어카에 파지를 실은 노인들이
물 먹은 달을 어깨에 지고 언덕을 오르면
이윽고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붉은 십자가
눈 내리고 럭키슈퍼 유리창엔 김이 서리고
호빵도 몇 촉의 그리움으로 환해져서
마음은 어느 함박눈 내리던 한 시절에
자꾸만 전보를 치는데
이번이 마지막 일거예요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도 넣지 않고
당신 이름을 부르는 일
달동네의 수퍼마켓 이름은 ‘럭키슈퍼’라야 온당하다. 겨울이면 호빵은 반드시 팔아서, 따뜻해지는 김이 모락모락 유리창을 젖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구직난의 전화번호로 전화 걸 기운도 나고, 함박눈 내리는 날 그리운 이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럭키슈퍼’ 하나씩은 달동네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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