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윤 ‘그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지 않다’ 전문
먼저 신발1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도 길바닥 어딘가에 노숙 중이다
그의 아내는 울며 개집에 앉아 있다
신발2는 성격차이로 갈라섰다 제법
메이커 있는 커플인데 서로 끈 색깔이 다르다 했다
소문난 해커인 신발3, 남의 집 방문을 열고 들어가
개인정보침해로 구속됐다
내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커피 배달중인 그녀
신발4를 빼 놓을 수 없다 껌, 아니
보도블록을 딱딱 씹으며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다
훤히 드러난 뒤태를 훔치며 신발5가 뛰어간다 … 중략 …
신발6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상갓집에서 다섯 시간째
다른 신발들의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다
길가 신음소리 내며 걸어오는 신발7은
석 달째 투병중인 노인이다 … 중략 …
신발8, 아아, 신발의 본분을 잊고 거실을 날아
거울을 박살냈다 그치지 않는 고성이
밤을 북북 찢어 놓는다
누구도 아침을 낳지 못했으므로
그 동네 신발들은 서로 인사하지 않는다
신발3의 모친인 신발9의 집을 엿본다
늘 그렇듯 방문 앞에 앉아 빈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에 눈빛 사나운 개집이 있다
개밥그릇 하나
울음소리 새지 않도록 한나절 뒤집혀 있다.
세상으로 나가 싸우려면 신발을 신어야 한다. 세상과 대적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대부분 싸움에 진 경험이 있거나, 질 것을 두려워하는 신발들이다. 그러면서도 공손할 줄 모르는 신발들이 요즘의 특징이다. 너무 낡아서 세상 바깥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신발도 있고, 그나마 신발이 없어서 나오지 못하는 개도 있다. 굶주리고 소외된 채 죽은 듯이 버티고 있는.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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