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도서관, 육성 동영상 일부 공개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대해 회고한 육성 동영상 일부가 22일 공개됐다.
동영상은 김 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7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총 41회, 43시간에 걸처 김대중 도서관의 `구술사(Oral History) 프로젝트’에 참여해 구술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김대중도서관측은 이 가운데 10여분 분량을 공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동영상에서 자신의 반세기 정치역정을 회고하며 역사를 보면, 결국 국민의 마음을 잡고 국민을 따라간 사람이 패배한 법이 없다며 물론 일시적으로는 패배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은 후라도 반드시 그 목표가 달성되고 성공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80년 내란음모 사건의 배후로 지목, 사형선고를 받기 직전 `협력하면 살리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이학봉 당시 합수부 수사국장의 회유를 받은 사실을 소개하면서 얼마 후 교도소에서 신문을 통해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고 너무 충격을 받아 잠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람들하고는 백분의 한 치도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아주 철석같이 들더라며 그래서 `죽자, 죽는 길 밖에 없다’, `죽어도 굴복, 타협은 안한다’고 결심을 했는데 그래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판 때마다) 재판장의 입을 뚫어지게 봤다고 당시 절박한 심경을 풀어냈다.
결국 사형이 선고돼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뒤 부친의 생사를 모른 채 걱정하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편지를 받고는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져 가슴에 품고 있다가 밤이 돼서야 이불을 올려서 덮고 봤다며 애틋한 부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54년 민의원 선거 낙선 후 재산을 날려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50년대 후반 생활에 대해선 항상 집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굉장히 고생을 했다면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정치를 포기하거나 딴 짓 하겠다,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안했다. 좌우간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고 회고했다.
지난 56년 영국 헨리 9세 시대의 순교자인 `토머스 모어’라는 영세명을 받은 것과 관련, 토마스 아퀴나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토머스 모어냐고 했는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며 이후 계속된 군사정권의 정치탄압을 떠올렸고, 어린 아들의 공부를 위해 목포 이사를 결심한 어머니에 대해선 어머니가 그런 결정을 안 했으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다. 특별한 부모의 은혜를 느끼고 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