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마법에 걸린 워싱턴 한인들
온종일 이야기 꽃 피우며 기뻐해
4분7초. 시간은 더디고 길었다. 빙판은 한없이 차갑고 냉정하게 보였다. 그녀가 트리플 러츠를 위해 공중에 솟아오를 때마다 TV 앞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오! 제발 실수하지 말아주세요.” 어떤 이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처럼 간절한 기도는 없었다.
지치고, 돌고, 차가운 중력을 떨치며 한없이 비상하면서 매혹적인 요정은 객석과 스크린을 홀렸다. 마침내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가 멎었을 때 퍼시픽 콜리시엄의 수많은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믿기지 않은, 그러나 완벽히 예상된 일이 일어났다. 세계 피겨 역사를 새롭게 쓴 퀸의 화려한 대관식이었다.
김연아(20)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워싱턴 한인사회는 요정의 마법에 걸린 듯 들떠 있다.
“김연아 선수가 눈물을 흘릴 때 저도 울컥했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입니다. 그녀가 있어 행복합니다.”
센터빌의 박승완 씨(39)는 아직도 전날 밤의 감격에 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박씨처럼 수많은 한인들이 잠을 미루고 25일 밤 11시를 넘겨 펼쳐진 여왕의 탄생 드라마를 지켜봤다. 식당가에는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면서 밤늦도록 응원전을 펼쳤다. 가정에서도 가족이나 지인들끼리 모여 두 손 모아 금메달을 기원했다.
김연아가 그랑프리파이널과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에 이어 올림픽까지 국제빙상연맹(ISU)이 주관하는 4개의 굵직한 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며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피겨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한인사회의 화제는 온통 김연아였다. 모두들 피겨 퀸을 이야기하며 자부심과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게이더스버그의 주부 김은정씨(42)는 “아이들도 잠을 안자고 함께 TV를 시청했는데 심장이 떨려서 연아가 점프하는 건 제대로 못 봤다”면서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타이슨스 코너의 한 미국회사에 다니는 아놀드 김씨(45)는 “오늘 회사에 출근하니 너도나도 김연아 칭찬이었다”며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한국인이란 자부심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로럴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하는 이준세씨(56)도 “김연아가 연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자 나도 가슴이 찡했다”며 “그동안 동계올림픽하면 남의 잔치로 별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코리안 잔치가 된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헤이마켓의 베틀필드고에 재학중인 김 조안 양(16)은 “연아 언니의 눈빛과 표정, 과감하고도 아름다운 동작에 전율을 느꼈다”며 “학교에서도 미국 친구들이 코리안 넘버원이라고 칭찬해줘 모처럼 가슴 뿌듯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인들은 또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김연아의 불굴의 정신이 이민생활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길 희망했다.
훼어팩스의 노정수씨(60)는 “우리가 짐작 못할 숱한 중압감과 상처를 이겨내고 우뚝 선 어린 김연아 선수는 한인 이민자들의 표상”이라며 “이 외롭고 험난한 이민생활을 연아 정신으로 이겨나가자”고 강조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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