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의 자랑은 자연경관이다. 레이니어, 올림픽, 노스 캐스케이드 등 3대 국립공원을 차치하고도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산이 지천이어서 주말에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주엔 산 아닌 해안에도 좋은 하이킹 코스가 널려있다.
북쪽의 오제트, 리알토, 라 푸시, 니아베이 등지 일원엔 산 못지않게 험준한 비치 하이킹 코스와 함께 플래터리 케이프, 시시 비치 같은 비경이 숨어 있다. 남쪽의 롱비치, 오션쇼어 등지는 낚시꾼과 조개 채취꾼들의 인기 나들이 코스로 꼽힌다.
태평양 해안이 아닌 퓨짓 사운드 내에도 벨링햄 남쪽의 오이스터 돔 같은 멋진 해안 하이킹 코스가 많아 한인들이 즐겨 찾는다. 하지만, 해안 하이킹 코스의 ‘베스트 중 베스트’는 따로 있다. 윗비 아일랜드의 ‘이비스 랜딩’(Ebey’s Landing)이다.
연방정부가 1978년 전국최초로 지정한 국립 역사보존지역(National Historic Reserve)인 이비스 랜딩은 현재 국립공원국이 관리한다. 영국 탐험가 조지 밴쿠버 선장의 부관이었던 조셉 윗비가 1792년 이 섬을 ‘처음 발견’한 후 약 반세기가 지난 뒤 미주리 출신의 아이작 이비가 이곳에 정착해 선착장을 만든 데서 지명이 유래됐다.
법률학도였던 청년 이비는 홀로 서부탐험에 나서 노다지 바람(골드러시)이 분 캘리포니아를 거쳐 당시엔 ‘오리건 자치령’에 속했던 올림피아로 올라왔다. 관리가 돼 올림피아, 킹 카운티 등의 지명 제정에도 관여한 이비는 1850년 연방의회가 미개척 토지 기증불하 법을 통과시키자 워싱턴주 최대 섬인 윗비 아일랜드로 잽싸게 옮겨왔다.
섬 중앙 부분의 가장 비옥한 땅 640에이커를 불하받은 이비는 고향의 처자와 아버지 제이콥 등 가족은 물론 친척, 친지들도 불러들여 ‘꿈의 땅’을 공짜로 얻게 해줬다. 이비 일가는 이 땅에 보리, 밀, 감자 등 곡물과 토마토, 양파 등 채소를 재배하는 한편 퓨짓 사운드 맞은편의 포트 타운센드와 교역하기 위해 선착장(랜딩)도 만들었다.
농사꾼 이비는 윗비의 기소담당 검사이기도 했으며, 올림피아(서스턴 카운티) 출신의 자치령 의회 의원이었던 1853년엔 의회를 설득시켜 오리건 자치령을 오리건과 워싱턴으로 분리한 연방정부의 ‘몬티셀로 각서’를 비준토록 했다. 그는 또 서스턴 카운티에서 아일랜드·제퍼슨·킹·피어스 등 4개 카운티를 독립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팔방미인으로 승승장구하던 이비는 어이없게 39세에 비명횡사했다. 1857년 8월, 카누를 타고 기습한 인디언 원주민들이 이비를 집밖으로 끌어내 총살한 후 그의 머리를 베어가지고 철수했다. 그 전해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추장이 피살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비는 그 전투에서 민간부대를 지휘한 공로로 대령 계급을 받았었다.
지난 메모리얼 데이에 찾아간 이비스 랜딩의 옥토엔 160여년 전처럼 푸른 보리이랑이 바람에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비좁은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 한 개, 피크닉 테이블 두개가 시설의 전부였고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였다. 왕복 5.6마일(등반고도 260피트)의 등산로와 그 아래 나란히 이어진 비치엔 남녀노소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울창한 숲을 낀 오솔길 등산로에서 비치로 떨어지는 왼쪽 모래 비탈에는 수많은 야생화가 장관을 이뤘고, 고사한 나뭇가지 위엔 독수리가 앉아 있었다. 맞은편엔 눈 덮인 올림픽산과 샌완 섬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돌아올 때 걷는 비치 길엔 형형색색의 조약돌들이 눈길을 잡았다. 필자의 동행자는 파도에 밀려온 다시마를 주워 횡재했다.
산과 달리 이비스 랜딩에선 탁 트인 전망과 간단없는 파도소리에 담긴 영겁의 신비와 함께 찰라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조개와 굴의 보고인 윗비 섬을 자주 찾아가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는데, 이들도 한번 쯤 이곳에 들러 색다른 분위기를 맛볼 만하다. 이곳 관광정보는 인터넷에 Ebey’s Landing을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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