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8일 새벽 3시에 막내 아들 승현과 함께 필라 공항을 출발, 4박5일의 여정에 올랐다. 승현과 같이 돌아다닌 외국 나들이는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 파나마 여행에서처럼 유익한 경험을 얻기는 처음이었다.
대체 파나마는 어떠한 나라인가? 운하는 어떻게 조성되는 것인가? 한국의 운하 문제는 아직도 결단이 나지않아 복잡한 논설들로 찬반을 다투고 있는 형편이다. 파나마에서는 이미 세계 제일의 운하를 운영하고 있는데.
파나마가 운하를 조성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대서양과 태평양이 분명히 구별되게 갈라지고, 그래서 그간 두 세계로 닫히고 막혔던 모든 재원 - 돈, 재산, 인력, 시간, 항로... 등이 개방되어 수많은 나라들에 막대한 이익을 끼치고 있어 크게 찬미와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운하란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파나마 운하가 특별히 유명한 까닭은? 육지를 파서 만든 수로(물길)가 운하다. 수리, 관개, 배수, 급수, 선박의 항해... 등을 위해 규모가 큰 목적으로 육지(땅)를 파는 것이다. 파나마의 경우도 그것이다. 중앙 아메리카의, 지형이 가장 좁은 그 땅에서 남과 북의 두 아메리카가 이어져 태평양과 대서양이 맺어져 서반구의 십자로가 되었다. 그래서 스페인과 남 아메리카 서부 사이의 중계 기지가 되어 있었던 파나마가 운하의 완성과 함께 그 전략적인 위상은 한층 중대성을 띄어 온 세계의 국제 정치와 경제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파나마는 비가 많다. 많은 우량 때문에 운하의 조작이 더욱 편리하다. 그러면서 중부의 산맥이 분수령을 이루고 있어 태평양 대서양의 두 경사면에는 작은 하천이 많이 흐른다. 파나마시는 1519년에 건설되었고, 페루 방면에서 스페인으로 나가는 금은 보화는 일단 파나마에 보내어 다시 대서양 쪽으로 날랐기 때문에 파나마시는 중계지로서도 크게 번창하였다. 파나마 운하는 프랑스의 민간기업에 의해 1881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회사를 두번이나 변경하였어도 완성하지 못하여, 결국 191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 의해 완성을 보아 현재에 이르렀다.
파나마는 세계적으로 볼 때, 아직도 후진국임을 면치 못할 처지이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운하를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수평으로 전진하던 선박을 그 희망에 따라 배를 번쩍 들어올려 대서양 쪽에서 태평양 쪽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운하 건설의 이익은 상상을 초월하기에 넉넉하다. 이제 선진국으로 발돋음할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멕시코, 구아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구아, 코스타리카 등과 같은 중앙 아메리카 제국 중에서 가장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라의 위상은 차츰 높아지고 있는데, 파나마 시민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파나마 여성에게는 파마가 없다. 까만 머리들을 한결같이 곱게 뒤로 간편하게 짧게 참새 꽁지처럼 불끈 묶어 놓았다. 또 그들에게는 울긋불긋 화장한 흔적도 없다. 그들에게는 하이힐(뾰족구두) 도 없다. 여학생들 운동화보다 1cm 정도 굽 높은 것이 그들의 정해진 칫수일까? 치마도 무릎 위로는 1cm 도 올라가지 않고 밑의 양말들은 모두 어두운 색이다. 남자들도 하나같이 간소한 복장이었다. 양복에 넥타이 맨 신사는 큰 호텔이나 관청의 고객이나 사무원인 듯한 몇 사람만이 보였을 뿐이다.
소박한 복장, 근면한 행실 등은 나라의 방침인 듯싶었는데, 밤낮으로 질주하는 승용차, 트럭등 수많은 고급 차량은 모두 외국차들인 것을 보면 ‘현대화’보다는 ‘부국으로’가 그들의 소망인 것 같았다.
교통질서는 정연하고 사고는 없는 편인 것 같은데, 길이 막히는 일이 빈번하였다. 한 번 막히면 10 분 이상씩 차 안에서 대기해야 하고 걷는 행인들은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그 기회를 놓칠새라 잡상인과 꽃장사가 달려든다. 꽃장사의 경우 징그럽도록 짙은 빨갛고 샛노란 장미 꽃다발을 들이밀며 흥정한다.
파나마의 국기도 샛빨간 색과 샛노란 색이 대각선으로 둘로 갈라져 두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빨간 깃발과 노란 깃발 - 이렇게 두개가 나부끼는 것 같다. 진짜 꽃다발도 꼭 두가지 색, 적과 황. 섰던 차가 떠날 때까지 그 두가지 색 꽃다발을 들이밀며 조른다. 그들의 선조들이 빨강과 노랑이 어울린 깃발을 꽂고 살았겠지. 그런 벽화도 여러군데 있었고 각 가정의 빈 발코니에도 빨강과 노랑! 오랜 세월 흘러온 적/황색은 앞으로도 길이길이 빨갛게, 노랗게 파나마 국민들을 번성과 행복의 길로 인도하겠지.
교통이 붐비는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빠져 나가니 ‘보고타’ 란 어설픈 상가가 나왔다. 차도 많지 않은 지저분하다는 평이 맞는 시가지였다. 식민시대의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았고, 널찍한 투우장도 옛모습으로 남아있어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로 남아있었다. 상점들 쇼 윈도우 앞에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있는 것이 보여, 그리로 발을 옮겼다. ‘녹색불(Blue Fire)’ 이라고 하는 에메랄드를 파는 가게였다. 그리 크지 않은 상점인데 쇼윈도우 밖에서는 기웃거리면서도 안으로 들어가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손님들의 푸념하는 듯한 표정과 손짓은 물건이 좋지 않고 비싸다는 뜻인 것 같아 나는 눈요기만 하고 ‘독립 기념비’ 쪽으로 가 보았다. 오래 되어 우중충한 4m 정도 되는 고색이 창연한, 손님도 몰리지 않는 어설픈 고물이었다.
중심가에서 벗어나 언덕 줄기가 좀 서쪽으로 비껴 세 갈래로 갈라져 나가는 곳에 보기 드문 큰 동상이 나타났다. 구리빛 짙은 오래 된, 민간인 지도자로 추측되는 입상으로 6~7m 가 넘는 작품이었다. 서양인 두어 사람이 달라 붙어 이모 저모 살피면서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 거리는걸 보고, 나는 마음이 바빠 호텔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군대는 키우지 않고 꽃을 좋아하는 파나마 사람들 - 평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의 바램대로 파나마에 평화로운 발전이 계속되어지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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