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운사에 10년 이상 머물렀기에 나에게는 많은 희로애락이 많이 얽혀있는 절이다. 강원을 나온 이후 줄곧 그곳에 있으면서 지도법사도 하게 되었고, 첫 전시회도 하였고, 대학도 그 곳에서 다녔으니 그 당시로선 개운사에 다니는 어느 신도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법당에 올라 염불을 할라치면 나에게 축원을 해달라고 해서 이미 축원이 끝났는데도 내 앞엔 축원카드가 쌓여있던 적이 눈앞에 선하다.
한 번은 법회가 끝나고 점심공양을 하는데 유수길 노보살님께서 나에게 대뜸 “법장스님! 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나 들어갈 묏자리 하나 잡아 줘! 나이 많아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말이야!” “노 보살님 저는 풍수지리를 모릅니다.” “스님께서 모르기는 왜 몰라. 나도 세상 오래 산 늙은이이니 척 보면 사람 안다우!”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노보살님!” “에이! 솔직히 내 부탁 좀 들어줘! 나 죽으면 스님께서 잡아준 묏자리에 들어갈 꺼야!”이렇게 나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으시고 막무가내 말씀하시는 바람에 지나가는 말로 “그러죠!” 하고 그 날은 넘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난데없이 장남인 정교영 사장님을 모시고 와서 다짜고짜 옥천에 있는 선산으로 가자는 것이다. 난감하지만 할 수 있겠는가. 가는 수밖에.....! 그곳이 정교영 사장님의 집안 선산이고 고향이기에 그곳에서는 정교영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옥천 선산으로 향하는 길에 차에 몸을 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정교영 사장님께서 눈물을 훔치시며 옛날 어머님께서 자기를 찾아온 말씀을 하신다. “옛날 제가 공부를 위하여 서울에 일찍 와서 사는데 어머님께서는 아들인 나를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추운 날인데도 버선발로 옥천에서 서울까지 걸어오신 분입니다. 버선은 다 떨어져 갈기갈기 찢어지고 발엔 동상이 걸린 데다 피가 흐르는 그 광경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 어머님을 내가 잘 모셔야하는데 사는 게 뭔지 일선에 뛰기 바빠 내 뜻대로 못하고 있음이 못내 아쉬워 눈물이 절로 납니다.”
나도 따라 눈시울을 적시며 선산이 있는 마을에 다가가니 벌써 정교영 사장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정교영 사장님의 옛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내 동래에 큰잔치가 벌어진 집 같았다. 정교영 사장님께선 아마 그 곳을 갈 때마다 그 곳 고향 어른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씩 꼭 대접 해오신 흔적이 역력함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상시 후덕하게 하신 덕분에 같이 간 나까지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사실 풍수지리를 모른다. 하지만 노 보살님께서 간절히 부탁하시니 불보살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산을 모두 둘러봤다. 둘러본 결과 한 장소가 맘에 들어 그곳을 가리키며 묏자리를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밥사발에 생년월일시와 이름을 써넣어 피봉식被封式을 하였다. 피봉식을 하려고 땅을 파는데, 그곳에서 지관地觀이라는, 한 노인이 나타나 “대사님께서 참 터를 잘 잡으셨습니다”하며, 쇄(방향을 가르치는 나침판)를 놓고 좌향坐向을 봤다. 지난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와 아들의 끈끈한 정! 그 누군들 없었겠는가! 애별이고愛別離苦를 뛰어 넘을 수 없는 인생무상 앞에 말없는 슬픔에 빠져들어 솟아오른 눈물 훔치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Feb 28.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