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날 팥떡을 만들어주겠다며 맷돌을 가지러 간 어머니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면 일단 떡을 얻어먹기는 글렀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을 돌려 팥을 갈 수가 없다. 원래 ‘어처구니’는 거꾸로 쓴 ‘기억(ㄱ)’자처럼 생긴 맷돌의 나무 손잡이를 일컫는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어떻게 ‘어이’없다는 의미가 됐는지 모르지만 예상 밖의, 또는 상식 밖의 말을 듣거나 그런 일을 겪을 때 흔히 그렇게 말한다. 어처구니와 맷돌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전혀 쓸모없는 나무토막이요 돌덩이가 돼버려 어이없어지는 모양이다.
미국사회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지만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반사다. 부모가 아들을 훈계하려고 종아리를 때리면 자녀를 몽땅 당국에 빼앗긴다. 경찰관이 대로상에서 술주정뱅이를 사살하고 교통위반 운전자가 단속경관에게 총질한다. 주차위반으로 차를 견인당하면 엄청난 토잉 요금 때문에 한 달간 길거리에 나 앉거나 손가락을 빨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연수생 시절에 겪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나와 보니 아파트 앞길에 세워둔 고물차가 없어졌다. ‘도로청소 날 주차금지’ 규정을 모르고 늦잠 자는 사이 차를 견인해 간 것이다. 불과 두세 시간 뒤 생돈 140달러를 토잉회사에 주고 차를 찾아오면서 이를 갈았다. 그 돈은 가난한 연수생의 한 달 식비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견인요금이 너무나 ‘어처구니 있게’ 느껴진다. 세월이 30여년 흐르면서 견인요금도 인플레 됐는지. 아니면 장소가 LA 아닌 시애틀이어서인지, 요즘 토잉회사들은 주차위반 자동차를 자기네 주차장에 견인해 놓고 800달러를 예사로 울거먹는다.
작년 겨울 시애틀 다운타운의 한 아파트 주민이 단지 내에 불법 주차한 픽업트럭을 견인당한 후 곧바로 토잉회사에 달려갔다가 798.25달러를 내라는 말을 듣고 기절초풍했다. 한 달 아파트 렌트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차를 되찾은 이 청년은 시애틀타임스에 토잉회사의 어처구니없는 횡포를 고발했다. 신문에 그의 억울한 사정이 보도되자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로부터 견인업계의 탐욕을 비난하는 전화와 이메일이 신문사에 쇄도했다.
그러자 그 와중에 토잉회사에 물경 1,300달러를 주고 도난당한 차량을 되찾은 사람 얘기가 보도됐다. 도둑이 아파트에 제대로 주차된 차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편의점 주차장에 버리자 업소주인이 토잉회사에 연락했다. 견인업주는 차를 1주일간 묵힌 뒤 주인에게 연락하고 1,242달러를 요구했다. 차 주인은 자신이 범죄 피해자인데도 범죄자처럼 당했다며 토잉회사가 요구하는 견인료는 부르는 게 값인데 이런 날강도를 그냥 두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날강도 같은 견인요금이 아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런 요금을 규제할 법령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국은 견인업자들이 100만달러를 받아도 속수무책이다. 위의 픽업트럭 주인청년은 토잉회사를 제소해 견인요금 800달러를 모두 돌려받았지만 담당판사가 내린 판결의 근거는 날강도 같은 요금이 아니었다. “원고가 나무에 가린 아파트 주자장의 주차금지 사인판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 근거였다.
토잉회사들이 5마일도 안 되는 거리를 견인하고 평균 600달러를 부과하는데도 규제할 법령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작년연말 토잉요금 상한선을 시간당 238달러로 묶자는 법안이 주의회에 제출됐지만 감감소식이다. 사람목숨이 파리목숨 같아도 총기규제법이 느슨한 것처럼 토잉요금 규제법도 업계 로비 때문에 흐지부지되는 듯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국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나라가 있다.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해도 ‘김일성 3대의 은덕’을 뇌까리는 북한이 그렇고, 멀쩡한 쇠고기를 미친 소라며 수십만명이 거리에서 광란을 벌이는가 하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1년여만에 자신과 측근의 비리에 대한 수사가 못마땅하다며 투신자살하는 한국이 그렇다. 부르는 게 값인 미국의 토잉 요금도 전혀 어처구니없는 건 아니다. 업자들은 “애당초 주차위반 안하면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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