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주에 가깝다.
“R과 P대학, 둘 중 어느 대학에 등록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망설임의 시즌에는 특히 그러하다. 이성이 주도하는 머리는 R대학으로 향하고, 감성에 사로잡힌 가슴은 P대학을 원하는 싸움판이 벌어진다.
머리와 가슴이 충돌하면 가슴이 승리를 거둔다. 누구보다도 마케팅 회사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미국에 진출한 바디샵은 이미지 선전, 즉 “우리 회사는 동물에게 실험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재활용한다”라고 화장품 제조과정을 이야기로 만들어 소비자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으로 성공한 대표적 회사다.
또한 미국 소비자학회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엔진 성능, 안전성, 고장률 등 기능을 중시하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느낌(볼보는 안전하다), 디자인(미니는 깜찍하다), 차별화상징(롤스로이스는 아무나 못산다)등 감성적인 이유로 마지막 결정을 한다.
인간이 감성으로 쏠리게 된 배후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에게 이성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물질적풍요를 불러오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무서운 파괴력을 경험한 인간은 이성에 대한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이성을 바탕으로 최대 다수에 최대 행복ㆍ편리ㆍ효율을 바탕으로 하는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결국 유토피아(ou+topos=어디에도 없는 곳)가 가진 본래의 뜻을 깨달은 인간은 좌절과 허무에 빠지고, 급기야는“이성은 믿을 것이 못된다”라는 불신에 이르렀다.
“내 손에 묻은 피를 지울 수가 없다.” 맨하튼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여 핵무기를 제조한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후 그렇게 고백했다. 대량학살무기를 생산하라고 주문받은 그는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질문하지 않고, 오직 과학자들의 이성을 총동원하여 주어진 시간 내 제작할 수 있는 방법에만 골몰했다. 수십 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나서야 그는“왜 그 무기를 만들었을까”후회스런 질문을 한 것이다.
대학 새내기 혹은 2학년생 가운데 비슷한 후회를 토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60%의 신입생들이‘대학 선택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대학미디어연구소의 통계가 그것을 말해준다.
감성에 끌려 P대학에 진학한 J양은 이렇게 고백했다.“공부하는 습관도 바꿔보고, 모든 것을 접고 공부에만 매달려도 지금 수강하고 있는 생물학과 화학에서 앞서가는 학생들을 따라 잡을수 없다. 아무래도 대학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등록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불타는 가슴이 차디찬 머리를 녹이고 있다. 대학 이름과 주변 눈치에 이끌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화려한 합격통지서, 자신의 이름이새겨진 대학 티셔츠에 감동을 받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무엇을 먹을래? 아무거나. 관심사가 무엇이지? 별로 없다. 매사에 그렇게‘모르겠다’로 일관하다가 몇 군데 대학에서 합격통지서를 받고 갑작스레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성ㆍ 감성 아니면 둘 다, 어느 쪽을 따라 최선의 결정을 해도 후회와 아쉬움은 남는다. 후회를 피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오펜하이머의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나는 대학에 왜 가는가”라는 비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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