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하루 종일 일하고 왔다”고 말하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바쁘게 일했다는 뜻이다. 대개의 경우 그가 말하는 하루는 업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 아니면 더 넉넉하게 해 뜬 후부터 해질녘까지의 전체 낮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상 하루는 해와 상관없이 자정부터 그 다음날 자정까지 24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이 평생인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마도 하루가 인간의 70년만큼 길게 느껴질지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하루살이의 한 시간은 인간의 3년 정도에 해당한다. 인간도 다를 것이 없다. 시간을 초월해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눈에는 969년을 살았다는 무드셀라도 한낱 하루살이로 보일 터이다.
‘쇠털같이 많은 세월’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실제로 세월(시간)은 그렇게 허구(許久)하지 않다. 사람의 수명을 70년으로 잡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613,200 시간이다. 1년에 8,760시간씩 줄어든다. 젊어서는 세월이 느릿느릿 가지만 늘그막에는 쏜살같다. 병에 든 술이 처음엔 넉넉해 보여도 절반 이상 마신 뒤로는 순식간에 바닥나는 것과 같다.
시간이 귀한 이유는 허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쓰면 회복할 수 없으므로 더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 한 시간 일하면 품삯으로 최소한 4,580원을 받고 워싱턴주에선 그 두배 가까운 9.04달러를 번다. 한 시간이면 드라마 한편을 볼 수 있고, 비행기로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갈 수 있다. 마라톤 경주에선 1등과 꼴지의 간격일 수도 있다.
그 귀중한 한 시간을 맥없이 손해 볼 때가 있다. 하와이•애리조나•일리노이 3개주를 제외한 미국의 전 국민이 하루를 23시간만 사는 날이 연중 딱 하루 있다. 바로 내일이다. 일광절약시간(서머타임)에 맞춰 새벽 2시를 3시로 앞당겨야 한다. 그러니 역사책의 올해 3월 11일 새벽 2~3시 사이는 출생자도, 사망자도, 교통사고도 없는 공백상태가 된다.
서머타임의 최초 발상자는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여름철엔 일을 더 일찍 시작해 저녁에 양초를 절약하자”고 제안했다(1784년). 실제로 시계를 조절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영국의 골프광 윌리엄 윌렛이다. 그의 제안은 영국정부보다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정부가 먼저 채택해 1916년 4월 30일부터 시행했고, 영국은 3주 후인 5월21일부터 시행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2006년까지 서머타임을 4월 첫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로 정했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에너지정책 법(2005년)에 따라 2007년부터 3월 둘째 일요일 오전 2시에 시작해 11월 첫 일요일 오전 2시에 해제하도록 바뀌었다. 시간이 일괄적으로 바뀌는 유럽 각국과 달리 미국은 3개의 지역기준 시간대별로 각각 바뀐다.
잠자는 동안 시간이 줄어들어 별 것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손해는 손해다. 한 해 두 번씩 집안과 직장은 물론 자동차 시계까지 일일이 고치는 일이 번거롭다. 당분간이지만 캄캄한 새벽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도 있고, 신체리듬이 깨져 하루 종일 멍청한 사람도 있다. 서울과의 시차도 17시간에서 16시간으로 줄어들어 헷갈린다.
숲속에서 낮잠을 자고 났더니 20년이 흘렀다는 립 밴 윙클(워싱턴 어빙 소설의 주인공)이나 24시가 지나도 희망의 새벽 1시가 오지 않고 고통과 좌절과 암흑의 25시를 잇달아 살았다는 요한 모리츠(게오르규의 ‘25시’ 주인공)도 있지만 시간은 결코 변함이 없다. 농부에겐 서머타임이 필요 없다. 젖소가 젖을 내는 때는 일년 열두달 일정하기 때문이다.
서머타임은 에너지절약보다는 하루 23시간을 사는 기분으로 24시간을 아껴 쓰라는 경종 같이 느껴진다. 한 시간 낮잠을 자면 하루살이처럼 3년을 손해 볼 것 같다. “한손에 가시 들고,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우 탁의 시조가 나이 들어가면서 새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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