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는 여성은 보행 때 아킬레스건을 비롯, 탄력성이 강한 힘줄 대신 주로 근육을 이용하기 때문에 같은 거리를 걸어도 에너지 소모가 더욱 심하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스랜드 소재 그리피스 대학의 박사 후 과정(postdoctoral) 연구원이던 네일 J. 크로닌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캠퍼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하이힐을 신은 채 뒤뚱거리며 걷는 젊은 여성을 목격했다. 그녀는 대단히 위태롭고, 불편해 보였다. 그날 캠퍼스에서 우연히 그녀를 지켜본 일부 여성들은 도대체 저렇게 불편한 신발을 신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일단 안쓰러운 마음을 느꼈을지 모른다. 반면 저런 멋진 디자인의‘고층 하이힐’을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도진 여성들도 몇몇 있었을 법하다.
내딛는 힘 강해져 근육 항시 긴장상태 초래
운동화 신어도 걸음걸이 불변 발목부상 위험
“굽 높이 낮추고 주1~2회 정도 신는 게 안전”
그 날 그 자리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캠퍼스 뒤뚱녀’를 지켜보았던 3인의 남성들은 보행과 관련한 생체역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었다.
당시 이들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고층 힐을 신는 여성들의 근육과 힘줄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하는 점이었다.
신발이 걸음걸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논란을 몰고 다니는 이슈다. 예컨대 맨발 달리기의 인기는 푹신한 쿠션이 붙은 신발이 발의 근력을 약화시키고 공간 내 신체 위치감각을 떨어뜨리며 부상에 기여한다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맨발 달리기의 인기는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발을 신지 않고 뛰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아직도 과학적 검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힐이 여성의 생체역학에 영향을 미치는지, 부상위험을 높이는지 여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 없다. 힐을 신는 여성들이 매일 수백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학계의 무관심이 놀라울 정도다.
그리피스 대학에서 ‘캠퍼스 뒤뚱녀’를 함께 보았던 3명의 호주 연구원들은 최소한 주당 40시간, 최소 2년 이상 하이힐을 착용해 온 9명의 젊은 여성을 모집, 그들이 동시에 궁금증을 느꼈던 문제를 풀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쪽 분야의 첫 연구였다.
이들은 아예 힐을 신지 않았거나, 거의 착용하지 않았던 10명의 여성도 동시에 모집했다. 비교를 위한 통제대상 집단이었다. 연구에 참가한 여성들은 10대 후반이거나 20대, 혹은 30대 초였다.
과학자들은 힐을 신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두 한 켤레를 연구실로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참가자들의 다리근육 활동을 추적하기 위해 전극판을 연결하고 동작포착 반사표지도 설치했다. 초음파 탐사봉(ultrasound probes)으로 다리 근육 섬유질의 길이도 측정했다.
연구에 참여한 모든 여성들은 26피트 길이의 보행로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걸었다. 보행로에는 걸을 때 발생되는 힘을 재기 위한 플레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통제대상 집단에 속한 여성들은 열 차례에 걸쳐 맨발로 보행로를 걸었다. 평소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은 맨발로 열 차례, 그들이 가져온 구두를 착용한 채 열 차례 걸었다.
캠퍼스에서 커피 휴식을 취하던 3인의 과학자들이 의심했던 대로 하이힐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굽이 낮거나 아예 없는 신발을 신어도 걸음걸이가 ‘정상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응용생리학’ 저널에 실린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힐 착용자들의 보폭이 굽 없는 신발을 신던 사람들에 비해 짧고 발을 내딛는 힘도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들의 발 근육은 상시 긴장상태를 유지했고 보행 때 발가락 끝으로 힘이 몰렸다.
이 같은 동작패턴은 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걸을 때에도 계속됐다. 힐에 익숙해진 여성이 맨발로 걸을 때 장딴지 근섬유에 걸리는 기계적 긴장은 통제대상 집단의 종아리에 가해지는 긴장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 건이라 불리는 힘줄과 다리 근육 가운데 주로 어느 쪽에 의존해 걷느냐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됐다.
거의 힐을 신지 않는 여성들은 보행 때 건(tendon), 즉 힘줄의 스트레칭(stretching)과 스트레싱(stressing)을 이용한다. 가장 많이 동원되는 힘줄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나 힐 착용자들은 대부분 힘줄이 아니라 근육을 사용해 걷는다.
현재 핀란드 유배스큘래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크로닌 박사에 따르면 가장 효율적인 걸음걸이란 힘줄만 늘어날 뿐 근육 길이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힘줄은 근육에 비해 훨씬 탄력성이 강한 스프링(spring)이다.
그러나 힐 착용자들은 이미 짧아진 종아리 근육을 더욱 늘리고 긴장시킴으로써 굽 없는 신발을 신었던 사람들에 비해 같은 거리를 걸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근육 피로를 초래한다.
명품 구두 루브탱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종아리 근섬유가 짧아지고 걸을 때 건을 사용하지 않는 게 정말 걱정할 만한 일인지 조금은 염려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루브탱이 발 근육부상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생체역학자들이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미학은 그들의 전문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힐과 부상위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다.
크로닌 박사는 “힐을 신고 걸을 때 발생하는 강한 근육 긴장으로 발목부상 위험이 커진다”며 “굽 높은 신발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발은 힐을 신고 있을 때의 형태가 디폴트 포지션으로 굳어진다”고 말했다.
디폴트 포지션, 즉 발의 근골격 기초형태는 케즈와 크록스 등 편의화를 끌고 다니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부상위험을 높인다.
크로닌 박사는 연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평균 25세로 대단히 젊다며 “이는 발이 힐에 적응해 형태 변화를 일으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단히 짧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몇십년이 아니라 단 몇년간만 계속 힐을 신어도 발이 사고 유발성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평소 힐을 즐겨 신기는 하지만 근육과 관절에 걸리는 긴장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에게 그가 들려줄 조언은 간단하다.
크로닌 박사는 가능하다면 일단 신발 높이를 조금 줄이라고 충고한다. 하이힐 착용은 한 주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는 얘기다. 만약 이런 조언이 실질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든지, 혹은 원하는 방법과 거리가 너무 멀다면 언제든지 가능할 때마다 하이힐을 벗어던지는 게 차선책이다.
섹시하고 멋진 구두는 직접 신지 않고 발 옆에 놓아두어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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