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워 가야금 테이프를 들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으니 내 어릴 적 고향 함경도 영변, 수구문(水口門) 생각이 절로 났다. 그 때 고향에는 유명한 영춘관과 방화정이라는 기방(妓房)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팔도(八道)의 명기들이 많이 있었다. 한여름철 고을의 돈 많은 양반들은 산수(山水) 흘러 내리는 시원한 수구문 정자에서 기생들을 불러 장구와 가야금 뜯는 소리에 맞춰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며 술판을 벌이곤 했다.
가야금을 뜯는 것은 그리움에다 인연이라는 마음의 정(情), 줄을 이어보자는 속마음이 컸었다. 가야금의 선율은 썩을 것이 다 썩고 남은 영혼의 뼈 그리고 텅텅 빈 마음에서 저절로 울리는 소리였다. 진정 영혼을 울리는 깨달음의 음율, 곱고도 맑은 소리는 가슴속에 절절한 통한과 서러움이 점차 투명해지며 내는 휘파람 일게다. 누가 그 줄을 타며 영혼을 울리는가. 한 음절로써 만음을 듣고 그 소리를 한데 모아 두 음절을 울리는 가야금! 가야금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한줄 한줄이 만물의 마음과 이어져 만감(萬感)이 우러나와 온 세상이 한 마음이 되는 공감의 음(音)이 아닌가싶다. 세상살이에 침묵과 초월의 무게가 풀어져 물이 되어 흘러가는 소리요, 고통과 눈물 그리고 절망이 풀어져 구름이 되어 떠나는 광경, 안타까움, 아쉬움이 사무쳐 말없이 손짓하는 석별의 뒷모습이랄까. 고뇌의 한줄, 무심의 한줄, 네 마음과 내 영혼에 줄을 잇고 달빛에 베이듯,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울리는 영혼의 음절이며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 하늘에 있는 별들의 운행이다. 생명체는 죽음을 위해 늙어가고 자연의 모든 빛깔은 새 빛깔을 낳기 위해 시들어간다. 그러기에 외로운 날은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지금 누가 영혼에 줄을 매어 내 영혼을 울리는가. 달빛에 소리 없이 꽂아지고 잊을 수 없어 깨어있는 줄을 울리는 손이여. 그만 줄이 끊어져 눈을 감아도 좋을 가야금과 한(恨) 많은 수심가 소리가 가을 밤, 내 마음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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