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원로 야구인 이덕준(李德俊) 씨가 19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이 씨는 독감 증세로 입원한 다음날 혼수상태에 빠졌다 끝내 숨을 거두었다.
고인은 경기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서 투수로 활약한 이래 60년간 야구에 인생을 바친 영원한 야구인이었다. 1955년 도미한 그는 1961년 재미 한인들로 구성된 코리안 타이거즈를 창단해 9년간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 대표팀을 비롯한 야구팀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국 팀과의 친선경기를 주선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응룡 감독, 임신근 코치, 유남호 코치가 미국에서 야구 지도자 연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1977년에는 서울에서 대륙간 컵 세계야구대회 개최국이 될 수 있도록 박상규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을 돕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는 미 프로야구팀의 공식 스카우트로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미 메이저, 마이너 리그 진출을 주선했다. 박철순의 밀워키 브루어스 입단과 김선우의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에는 그가 있었다. 86년에는 아시아계 선수들로 구성된 미 대표팀 단장을 맡아 중국서 친선경기를 갖는 등 야구 불모지인 중국에 야구를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또한 재미한인야구협회장을 맡아 한인사회에 야구를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고령에도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15년 전부터 메릴랜드의 몽고메리대학 야구팀 코치로 활약해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한인 청소년 야구교실을 열어 마지막 정열을 불살랐다.
몽고메리 칼리지는 웹사이트에서 “오랫동안 젊은 선수들의 스승이자 멘토였고 워싱턴 지역의 야구 아이콘이었던 그의 죽음을 알리게 돼 가슴이 아프다”면서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다.
고인의 뷰잉은 22일(화) 저녁 8시-9시, 장례식은 23일(수) 오전 10시 성 김 안드레아 천주교회에서 열린다. 주소 17615 Old Baltimore Rd., Olney, MD 20832
유족으로 부인 이현수씨와 태미, 마지, 도로시 등 세 딸이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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