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복수국적제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2010년 개정 국적법으로 인해 대다수 젊은 한인 2세(남자)들은 모국에서 장기체류가 힘들게 됐다. 새 국적법은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한국 국적자(영주권자)일 때 태어난 자녀는 호적에 신고를 하지 않아도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만 18세가 되는 해 3월31일 전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으면 남자는 무호적자라도 자동으로 징집대상에 편입된다. 종전의 국적법은 22세 때까지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되게끔 돼 있었다. 원정 출산자들의 병역기피 방지를 위한 취지의 법이 정작 애꿎은 한인 2세들과 부모들에 유탄이 튄 것이다. 해외 동포들 입장에서는 국제화시대에 역행하는 현대판 ‘주홍 글씨’나 다름없다.
▲선천적 복수국적제의 문제점은 먼저 입법과정에서 철저하게 재외동포들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청와대와 MB 정부가 주도한 국적법 개정을 아는 재외동포는 아무도 없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이, 한국에 호적 신고도 않았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복수국적자로 둔갑한 것이다. 정부는 재외동포들에 알리지도 않았고 입법 후에도 제대로 홍보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졸속으로 입법화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정부의 편의주의다. 정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병역 부담 없이 한국에서 장기체류를 하려면 국적회복을 신청하면 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는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꼴이다. 출생신고를 다시 하는 등 국적회복을 신청하는 절차가 이만저만 복잡한 게 아니다. 재외동포들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무성의한 편의주의 정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국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도 선천적 복수국적제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국적법뿐만 아니라 병역법, 여권법 등 소관부처가 다르고 관련 규정도 다르다. 관련법도 자주 바뀌는데다 소관부처 담당자들도 잦은 보직변경으로 “나 몰라라”가 대부분이다. 자기 소관 규정만 알고서 대답할 뿐이다. 게다가 전문가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이 제도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안 되고 있다. ▲네 번째는 미국과의 이해관계의 충돌 가능성이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에 따른 병역법 적용은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시민을 데려다가 한국 병역법을 적용해 군대생활을 강제하는 것이다. 어느 정부가 그 군인을 보호하고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군 생활 도중에 사고라도 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보상의 주체 문제도 뒤따른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충돌할 때 미국에 충성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미국 시민이 한국군에 복무중이라는 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선천적 복수국적제는 철폐 또는 개정돼야 한다.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해법은 있다. 우선 한국 정치권을 움직여야 한다. 선천적 복수국적제의 뿌리는 2005년 이른바 홍준표법(국적법)이었다. 상류층 자제들의 원정출산과 유학 등으로 인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한 입법이 훗날 재외동포 2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입법기관인 정치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주한인들이 단합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한인회들도 이 사안을 통해 모처럼 존재이유를 찾아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정부에서 태스크 포스를 설치해야 한다. 선천적 복수국적제에 대해 정확히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정부기관이나 담당자가 없다. 외교부나 병무청, 법무부 등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물론 총리실 산하에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일년에 한두 차례 형식적인 회의 하는 걸로 끝이다. 설령 의제로 올라도 내용을 정확히 모르니 수박 겉핥기 식이다. 결국 각 부처 담당자, 전문가들로 태스크 포스를 설치해야 한다. 여기에는 미국법 등 국제법 전문가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원정출산자와 영주 목적의 한인 2세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차피 선천적 복수국적제의 취지가 원정출산자의 병역기피 방지용이라면 두 집단을 구분해 적용하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의외로 간단하다. 원정출산 부모들은 대다수가 한국에 적을 두고 생활하고 있다. 부모의 한국 거주기간 등을 기준으로 규정을 만들면 된다. 원정출산자와 이민 2세들을 구분도 못하는 한국정부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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