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인터뷰
▶ 다운타운서 ‘영스마켓’ 25년간 운영 하영표씨
베풀며 사는 지혜를 통해 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하영표씨가 자신의 지나간 삶을 회고하고 있다.
“25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정직’과 ‘이웃과 함께’라는 두 가지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제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 동양인이라는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이웃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샌디에고 다운타운과 인접해 있는 메인 스트릿에 지난 89년 문을 연 ‘영스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하영표(61)씨.
경남 밀양 출신인 하씨는 지난 88년 가족과 함께 도미, 이듬해인 89년 현재의 자리에서 영스마켓을 오픈하고 25년 동안 줄곧 한 우물을 파며 외길을 걸어왔다.
당시만 해도 이곳의 주민 중 흑인이 70%, 히스패닉이 30%를 주를 이루던 소위 빈민지역이었다.
하씨는 척박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이 넉넉한 인심과 다정한 동양인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영업을 하면서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매해 축구공을 비롯한 운동기구를 전달하고 시 경찰국에도 수시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면 외상을 주면서 그들과 동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지역 주민들과 끈끈한 친분을 기반으로 1년 만에 식당, 전화기, 태권도장이 입점해 있는 총 2만9,000스퀘어피트 규모의 현재의 건물은 인수했다. 건물을 매입하고 나서도 하씨는 겸손과 다정다감함으로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0년 풋볼선수로 기대를 받던 한 고등학생의 장례비 모금이다.
“당시 출라비스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흑인 고등학생이 2010년 오리건주로 원정경기를 갔다 물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을 포함한 가족들과 너무나 친숙하게 지냈던 저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추모기금 모금행사를 해 약 2,000달러를 모아 유족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씨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일본 지진이나 필리핀 대참사 때도 자발적으로 모금행사를 펼쳐 그때마다 성금을 전달하곤 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격으로 하씨는 유명하다.
지난 2012년 7월 주차장 문제로 ‘장애인 공익 소송’을 당했을 때 하씨는 “이웃 주민들과 상의해 본 결과 악의적인 소송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법적 싸움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며 “당시 언어는 물론 시간과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결국 1년여 만인 지난해 승소해 주변사람들에게 정의는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하씨는 은퇴 후에는 한인 1.5세와 2세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태용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