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하면 떠오르는 것이 혼의 일종인 ‘바그너 튜바’란 악기다. 트럼본보다 강하고 혼보다 두텁고, 어두운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를 말한다.
바그너는 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 더 큰 소리의 악기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자신만의 시그네츄어… 즉 음악을 만드는데있어 보다 강력한 악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크고 어둡고 웅장한 음악… 이 음악을 통해 바그너가 이루려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흔히 삶에서 죽음을 미끼로 쓰는 장사꾼이 있다면, 그 장사꾼이야말로 생명을 거래하는 거상(巨商)… 즉 성자 아니면 악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상 죽음을 미끼로 쓴 정치가가 있었다면 바로 아돌프 히틀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로 인해 희생된 유태인 수만해도 4백만이 넘는다고 하니 히틀러야말로 정치에서의 악마 아니면 미치광이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의 아이돌(우상) 바그너 역시 죽음을 전재로 한 죽음의 피안을 다룬 예술가였다는 점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고 외치는 것 같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점이다.
바그너의 예술만큼 지겹고 긴 예술도 없다. 그러기에 흔히 바그너의 예술에는 끔찍한 15분이 존재한다고들 말한다. (사실은 시간반) 바그너는 왜 시간반 이상의 끔찍함을 인내하고 동참해 주길 바랬으며 눈을 감고 도를 닦기 바랬을까? 이미 앞에서 암시했듯, 더 크고 더 어둡고 웅장한 음악…그것이 전달하려는 바는 바로 죽음… 즉 장송 예술에 대한 도취 때문이었다.
바그너만큼 죽음의 감동… 인간이 가장 큰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갈파한 작곡가도 없었다.
‘링 사이클’에서 울려퍼지는 거대한 바그너 튜바… 그 장송 행진곡의 폭발적 굉음 앞에 압도되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감동은 강함에서 나온다. 그러나 강한 것이 늘 감동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바그너의 예술은 강하다. 왜? 바로 죽음의 파괴력 때문이다. 죽음을 극복한 자에게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바그너 예술의 그 지겨움… 그 긴 시간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바그너 예술을 추종하고, 그 예술에 미친 매니아들이 오직 바그너에만 국한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사상과 철학, 지성의 복합체… 독일정신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그 파괴력이 더 컸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현대는 바그너를 알지 못하고 음악과 낭만주의를 논할수 없다.
수년전 다니엘 바렘보임이라는 유태계 지휘자가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작품을 지휘했을 때 세계 예술인들은 바렘보임의 용기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왜? 그것은 히틀러가 이해했던 바그너와 실제 바그너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유태적 이기주의… 회복불능에 빠진 사회 정의를 위해 바그너의 음악이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바그너의 예술에는 적어도 끔찍한 15분은 있었을지언정 기만과 사치는 없었다.
그러나 바그너의 예술에는 ‘바그너 튜바’라는 역설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그너는 왜(순화의 예술)음악에 보다 강력(폭력적)한 무기(악기)가 필요했을까? 그것이야말로 목적과 수단의 미스테리… 나치와 독일정신의 연계없이 바그너를 떠올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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