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한인들 뷰티서플라이 업계 일궈내
▶ 렌트비 LA의 절반, 싼 물가로 안정된 생활
※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4편 미국의 심장, 중서부의 한인들】
① ‘버드와이저’의 도시 세인트루이스
세인트루이스(St. Louis)는 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도시다. LA 한인들에게는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도시, 버드와이저 맥주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우선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하다. 봄철 출근길은 한국의 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고, 가을철에는 도시 전체가 화려한 단풍으로 뒤덮인다. 미국의 심장부라서 그런지 주민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액센트 없는, 그야말로 미국의 ‘표준말’이다. 이곳에서도 한인들은 주류를 형성하는 백인들이 부러워하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로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40년 넘는 이민역사, 뷰티 서플라이 업계 태동
세인트루이스는 약 30년 전 미국에서 한인들이 뷰티 서플라이 업계에 가장 먼저 투신한 지역이다.
2014년 말 현재 지역 내 한인운영뷰티 서플라이는 100개를 웃돌며 오는 2020년까지 140개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세인트루이스 도착 후 가장 먼저 만난 조원구(69) 제39대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도 위성도시 퍼거슨에서 뷰티 서플라이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 회장은 “제일 처음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는데 브라질, 아르헨티나, 뉴욕, 시카고, 애틀란타, LA 등을 거쳐 1998년 세인트루이스에 정착했다”며 “20년 가까이 살아보니 분위기가 조용하고 고향 생각이 나게 만드는 도시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 한인인구는 약 8,000명. 뷰티서플라이와 세탁소가 한인업소가 주를 이루며 이밖에 식당, 마켓, 제과점, 자동차 정비, 병원, 미용실 등 다양한 분야의 비즈니스가 영업 중이다.
이곳에서 출생했거나 어릴 적 이민 온 1.5세 및 2세들의 경우 의사, 변호사, CPA, 교사, 간호사, 공무원, 금융계 등 여러 분야에 진출, 코리안 아메리칸의 우수성을 뽐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인 1.5세인 재키 윤씨가 미국 최대 은행 중 하나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전무급인 세인트루이스 지역 사장에 임명돼 한인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인사회 규모가 작지만 각종 한인단체들의 활동은 왕성한 편이다.
한인회는 매년 메모리얼 연휴 때 한인 체육대회를 개최하며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음식을 알리는 코리안 페스티벌도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 한인뷰티서플라이협회, 한인합창단, 한인산악회, 한인청소년회, 한인체육회, 한국학교 등도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1992년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거주해온 한인소망교회 강원용(63) 목사는 “세인트루이스는 한인 유동인구가 거의 없고 한인들의 생활은 매우 안정적”이라며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당시에는 대부분 한인들이 아파트에 살았는데 지금은 절대다수가 자기 집에 거주한다”고 전했다.
■ 순수한 주민들, 싼 물가 매력
LA에 거주하는 한인 중 상당수는 “LA는 물가가 비싸서 못 살겠다.
타주로 이주해볼까”하는 생각을 한두 번은 해봤을 것이다. 대도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세인트루이스의 물가는 LA와 비교하면 정말 저렴하다.
한인 중 상당수는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에서 20~30분 정도 떨어진 체스터필드, 크레브코어, 볼윈 등에 사는데 깨끗한 3베드룸 하우스는 30~40만달러에 구입할 수 있고, 안전한 동네의 2베드룸 아파트는 월 렌트비가 900~1,000달러 정도라고 한다. 딱 LA의 반값이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 생활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한인 중 뜨내기 인구는 거의 없다. 대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못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현지 한인들은 전한다.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2년 전 히터 생산업체인 ‘왓로우’ (Watlow)에서 엔지니어로 채용된 손병욱(28)씨는 “우리 회사 엔지니어 중 내가 유일한 유색인종”이라며 “타민족 문화에 대해 무지한 주민이 많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대다수여서 사람들은 매우 순수하다”고 말했다.
■ 정착하러 온다면 마음 다해 도울 겁니다 - 강원용 목사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도시가 바로 세인트루이스입니다”
강원용(사진) 세인트루이스 한인소망교회 담임목사는 교인들 사이에서 ‘아버지’로 통한다. 목회를 하면서 타 지역에서 이주하는 한인들의 정착을 돕는 일에도 열심이다. 23년간 소망교회를 맡으며 교인 250명, 지역 내 한인교회 중 유일한 영어예배가 있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강 목사는 “1992년 신학을 공부하러 세인트루이스로 왔는데 이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며 “과거에는 한인 2세들이 대학졸업 후 거대도시에 정착했지만 요즘은 상당수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강 목사에 따르면 지역 내 한인교회는 14~15개 정도. 한인인구의 25% 가량이 개신교라고 한다.
그는 “이민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신앙생활도 하고, 필요한 정보도 교환하고, 희로애락도 나누는 장소가 바로 교회”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대도시가 아니어서 일자리가 많은 편이 아니라 정착하기 쉽지는 않지만 세인트루이스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면 성심성의껏 돕겠다”고 약속했다.
강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수시로 다운타운을 방문, 불우이웃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등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 아내 몫까지 이웃 돕는 삶 이어갈 것 - 김희준 변호사
“아내 몫까지 열심히 살면서 어려운 한인들을 돕겠습니다”
아주공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1세 때 도미, 1989년 세인트루이스에 정착한 김희준(54·김희준 변호사사무소 대표) 변호사처럼 세인트루이스에 대해 잘 아는 한인은 없을 것 같다.
다운타운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며 교통사고, 상해, 이민법, 상법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김 변호사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아무리 멀리 가도 자동차로 40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도시가 세인트루이스”라며 “미국 어느 도시보다 가족이 살기 좋고,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평생 세인트루이스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6월 하늘이 무너지는 시련을 겪었다. 사랑하는 아내 김경원(당시 56세)씨가 5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 그는 “아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는데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며“ 아내의 몫까지 열심히 살면서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돕는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맥도넬 더글러스에 취직한 김변호사는 세인트루이스 법대를 졸업한 뒤 1998년 법조계에 투신했다. 2004년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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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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