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요 때 한인업소들 피해 커 전소된 곳도
▶ 시간 지났어도 주민들 인종별 입장차 여전
※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4편 미국의 심장, 중서부의 한인들】
② 마이클 브라운 총격사망 퍼거슨
세인트루이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8마일 떨어진 인구 2만명의 소도시 퍼거슨(Ferguson). 2014년 8월9일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28)으로부터 여러 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퍼거슨은 하루아침에 무법천지로 돌변했다. 브라운의 죽음에 분노한 흑인주민들은 거리를 휩쓸고 다니며 한인업소, 주류업소를 가리지 않고 약탈·방화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10여개 한인업소가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사건발생 1년이 지났지만 한인들의 아픔과 흑인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퍼거슨을 방문, 현지 분위기를 취재했다.
■ 주민 24% 최저생계비 생활 흑백 불균형 심해
퍼거슨은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에서 북서쪽으로 20분 거리에 있으며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전체 인구 2만1,000명 중 67%가 흑인, 33%가 백인으로 2014년 현재 중간 가구소득은 3만7,517달러이다.
반면에 미주리주 전체의 중간 가구소득은 4만7,333달러이다.
주민의 24%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미주리주 전체보다 1.5배나 많다. 아울러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는 흑인은 28%로 시 전체 비율을 웃돈다.
2013년 기준 퍼거슨의 체포자 현황을 보면 흑백 불균형 현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2013년 경찰에 의해 체포·연행된 흑인은 483명에 달한다.
반면에 백인은 10분의1도 안 되는 36명에 그쳤다. 몸수색을 당한 주민의 92%와 불심검문 등을 위해 차량제지를 당한 사람의 86%가 모두 흑인이다.
■ 한인업소 13곳 피해, 2곳은 전소
남가주 뺨치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3일 오전 10시께. 퍼거슨에서 ‘탑 뷰티’ (Top Beauty)라는 뷰티서플라이 업소를 운영하는 조원구(69)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의 승용차를 타고 TV 뉴스로만 접해온 퍼거슨 중심가로 향했다.
2007년부터 퍼거슨에서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해온 조 회장은 “1975년 미국에 온 뒤 크고 작은 범죄 피해를 15번이나 당했다”며 “흑인들이 밉기는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기에 사건발생 후 브라운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성의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에어포트(Airport) 길을 달려 웨스트 플로리산트(W. Florissant)에서 우회전, 퍼거슨 중심부로 향했다. 몇 블록을 지나자 조 회장은 “저기 오른쪽 공터가 보이죠? 소요사태로 한인업소 2개가 불에 타서 없어진 자리에요.”
조 회장은 공터 쪽으로 차를 몰아세웠다. 높은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공터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한인업소 2곳이 영업했으나 브라운 사건의 당사자인 윌슨 경관이 지난해 11월24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에 의해 불기소 처분되자 흑인들이 또 다시 들고일어나 두 업소에 불을 지른 것.
조 회장은 “퍼거슨 소요사태로 13개 한인업소가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수만 최소 수백만달러에 이른다”며 “전소된 업소를 운영하던 한인들은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 한인들은 친구, 약탈·방화는 용납못해
공터를 떠나려는 순간 브라운이 총격을 받고 사망한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장바구니를 들고 길 가던 중년의 흑인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여성에게 다가가 “LA에서 온 한인신문사 기자다. 혹시 마이클 브라운이 총격을 당한 장소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완다 존슨(47)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흑인여성은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그곳을 지나야 한다. 내가 안내하겠다”고 말해 존슨을 차에 태웠다.
약 1분 정도 캔필드를 따라 가니도로 한복판에 한 줄로 수북이 놓인 인형과 장난감이 보였다. 존슨은 “저기가 브라운이 총을 맞고 쓰러진 장소”라며 “아직도 그날을 잊지 않고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건 발생 후 이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많은 한인들이 약탈·방화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자 존슨은 “나도 얘기를 들었다. 한인들은 우리의 친구다. 경찰이 흑인 소년을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
퍼거슨 주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총격사건 현장에서 또 다른 흑인주민을 만났다. 키가 크고 근육질인 로버트 스파이크스(30)는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아직도 흑인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며 “진정한 평등이 실현되기 전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내 월그린스 주차장에서 만난 백인남성 루크 합킨스(41)는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이 목숨을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윌슨 경관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주변 업소들을 타겟으로 하는 방화·약탈은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브라운이 사망한지 1년이 지난 지금 퍼거슨의 겉모습은 평화로웠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시내 곳곳에 묻혀 있는 것만 같았다.
■ 가게 다 타지 않아 천만다행 - 폭동 피해자 이백우씨
“집에서 TV 뉴스를 보며 가게가 불에 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어요. 다음날 아침 가게에 나와 보니 물건의 3분의1이 사라졌더라구요”
퍼거슨 중심가에서 뷰티 서플라이업소 ‘뷰티 월드’(Beauty World)를 운영하는 이백우(63)씨는 하마터면 피땀 흘려 일군 비즈니스를 통째로 잃을 뻔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던 윌슨 경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2014년 11월24일 오후 4시께. 퍼거슨 경찰국 소속 경관 2명이 갑자기 업소 안으로 들어와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빨리 문을 닫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집에 도착해 TV를 켜고 나서야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이씨는 “가게가 경찰서에서 차로 1분도 채 안 걸리는 장소에 있어 브라운이 사망했을 당시 물질적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며 “경찰관들도 가게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에 따르면 폭도들은 업소안으로 침입한 뒤 1시간15분 동안 내부를 헤집고 다니며 물건을 쓸어 담았고 일부는 불까지 질렀다.
피해액은 무려 20만달러에 달했다. 가게가 전소되지 않았고, 가족이나 직원이 다치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나마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손실의 상당부분은 보상받았지만 그날 이후로 보험료가 20%나 올랐다. 이번 일로 받은 정신적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이씨는 “피해를 당하고 나서 일주일은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며 “뷰티 서플라이를 접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흑인이라고 모두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흑인들과 공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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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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