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황혼이혼 급증
▶ “남편 시중에 지쳤다” 별거도 늘어 장수시대 맞아 남은 인생 재설계
“내 나이 예순일곱에 이혼했어. 병원에서 유방암이라고 수술하자는 말 들으니 살아 남으면 꼭 이혼해야겠다 싶더라고. 남편은 남들 보기엔 멀쩡한 회사원이었지만, 혼자만 근사하게 살았어. 집엔 한 푼 안 가져다주고, 춤추러 다니고, 멋 내는 거 좋아하고. 내가 미용실하며 악착같이 벌어 새끼들을 키웠어.
이혼한다고 하면 노망났다고 할 줄 알았는데, 변호사 하는 큰 딸은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래. 혼자서 3년을 살았어. 너무 좋아. 낮에는 문화센터에 나가 장구랑 사교댄스를 배워. 친구들 만나 차도 마시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만날 구속 받고 숨 막히게 살다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니까 얼마나 자유롭고 평온한지 몰라. 애들 아버지는 재결합하자고 난리야. 애들도 잘 컸고, 각자 번 재산도 있고, 보험도 든든하게 있는데, 그 지옥 같은 생활을 왜 또 해?”
최근 한국에서 이른바 ‘황혼이혼’을 한 한 70대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결혼생활 20년 이상된 부부들이 갈라서는 ‘황혼이혼’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해 ‘신혼이혼’보다 많아진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본보 4일자 보도) 한인사회에서도 이같이 노년에 갈라서는 부부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상황이 됐다.
상당수의 은퇴노인들이 연금에 의존하는 미국사회의 특성상 미주 한인노인들 사이에서 한국에서처럼 황혼이혼 건수가 급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도 노인들이 이혼이나 별거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경우나 또는 한국에 거주하는 노부모를 둔 미주 한인들이 갈라서는 부모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LA의 한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모(68)씨는 올해 초 아파트 입주가 결정되면서 살던 집에 남편을 두고 홀로 독립했다. 같은 반찬 두 번 상에 올리지 못하게 하고, 팬티까지 다려줘야 입던 남편 시중 들 필요 없으니 하루 종일 시간이 남는다. 귀찮게 하는 사람 없어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식사도 반찬만 몇 개 사다 먹으니 간단해서 좋다.
정씨는 “친구들은 남편이 바람 나서 이혼하자 하면 어쩔 것이냐 하는데 받을 게 있냐. 줄게 있냐. 살 곳 있고, 연금 나오니 이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인 법조계에 따르면 또 몇 년 전에는 남가주 지역과 한국에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70대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할머니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한 케이스도 있었다.
황혼이혼 급증은 현재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결혼생활에서도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100세 시대를 내다보게 되자 자녀양육이 끝난 50~60대에 자신들의 ‘남은 인생’을 다시금 재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50세가 넘은 부부의 이혼이 1990년도에 비해 두 배 증가했으며, 그 중 65세 이상의 이혼이 매우 큰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페퍼 슈워츠 워싱턴대 사회학 교수는 “결혼생활이 끔찍하진 않지만 더 이상 만족스럽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양육의 과업은 마쳤고 30여년의 생이 남아 있다. 과연 이걸 계속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의 법원행정처가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국의 황혼이혼은 전체 이혼의 28.7%를 차지, 5년차 미만의 신혼이혼(23.5%)에 크게 앞서 있다. 또 50~60대 10명 중 7명은 황혼이혼에 공감한다는 설문조사도 발표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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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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