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절망에 빠진 조선 왕실에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환갑에 가진 고명딸에 대한 고종의 사랑은 각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간 출입을 삼가야하는 풍습도 무시하며 자주 찾더니, 50일째 되던 날엔 아예 덕혜옹주의 거처를 함녕전으로 옮긴다. 심지어 걸어서 2~3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유치원을 만들고, 덕혜옹주를 가마에 태워 보내기까지 한다.
식민지 시대, 일제의 감시 속에 살던 고종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었던 딸이 덕혜옹주다.
1919년, 덕혜옹주가 8세가 되던 해 갑자기 고종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조선에는 일본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6년 후,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씻지 못한 채 강제로 일본에 보내진 덕혜옹주의 삶은 힘겨웠다. 독살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보온병을 들고 다녔다.
열네 살의 사춘기 소녀에게 아버지를 독살했을지도 모르는 나라에서의 생활은 버겁고 무서웠다.
1931년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대마도의 백작과 정략결혼한다. 왕실의 핏줄인 옹주가 일본인, 그것도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대마도 섬의 백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선인들은 분노한다. 한 일간지는 덕혜옹주의 결혼사진에서 남편의 얼굴을 지우기까지 했다. 1년 후 딸 하나를 낳았다는 보도 후 그녀는 언론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수상한 소문들이 잇따랐고 급기야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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