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Mother
우리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Had no show of her tears to us. Yet
제가 집을 떠나오기 전날 밤 She was crying. The night before I
묵주를 들고 우셨지요 Would leave home. She dared cry a lot
소리 내어 통곡을 하셨지요 Holding the rosary in her hand
저는 자는 척 했지만 Pretended, I to sleep,
고통의 풍랑을 헤쳐 온 한 여인의 I saw a lady there, who had overcome
아픔을 보았습니다. The turbulence of odds and hardships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를 Although I could not know whole stories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of her life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I was crying, too
그날 이후 어머니가 제게 보낸 After my departure, letters followed
꽃잎 붙인 편지들은 from Mother, picks of floral leaf in it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밝혀 주는 Which had enlightened me
등대와 같았습니다. Like lighthouse in the dark
어떤 유혹에도 흔들릴 수 없는 It was symbol of decency and rock hard
거룩하고 든든한 방패였습니다 Shield none can penetrate.
이해인(1941- ) 영문 번역(변만식)
수녀 시인 이해인이 1964년 성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출가하는 마지막 밤 이다. 이해인 수녀가 정착한 성 베네딕도 수녀원은 바닷가에 위치한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하였으리라. 그녀의 사모곡 “어머니 그리울적 마다/눈물을 모아둔 항아리가 있네/들키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가슴에만 키워온 둥글고 고운 항아리/“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태어난지 3일만에 세례를 받았다. 6:25 때 아버지를 여의고 전란의 와중에서 초,중,고를 전전하면서 성장하였고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수도의 길에 들었다. 대장암 선고를 받았으나 지금은 부산에서 장기 휴양중이며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상태이다.
<변만식 윤동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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