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두석 회장과 아리랑공동체 임원들이 변수 선생 룸 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리랑USA공동체(회장 장두석)가 한국인 첫 미국 대학 졸업생인 변수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의 선구자적 정신을 기렸다. 변수 선생은 128년 전인 1891년 메릴랜드대학 칼리지파크의 전신 메릴랜드 농대를 졸업했다.
아리랑공동체 임원은 22일 메릴랜드대학 칼리지파크의 변수 룸을 비롯 기념관 및 기념비, 그가 열차사고로 사망했던 칼리지파크 인근 기차역, 벨츠빌의 성요셉 성당 묘지에 있는 묘 등 유적지를 방문, 변수 선생의 근대화 정신을 기렸다.
장두석 회장은 “조선의 젊은 유학생이었던 변수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룸이 칼리지파크 캠퍼스 내 유니온 빌딩에 따로 마련되고, 그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는데 놀랍고 자랑스러웠다”며 “그의 발자취를 함께 둘러본 모두가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고국의 경제 부흥을 꿈꾸고 매진했던 변수 선생의 흔적은 정치적 혼란 시대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선구자로 개척정신이 강했던 변수 선생을 역사 속 인물로 재조명한 다큐 영화를 만들어 후세들에게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투어에는 유영집 한의사, 최한용 목사, 김병은 목사, 황용식·황영애 부부가 참석했다.
한편 변수 선생은 통역관 집안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1883년 조선왕국 보빙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후 귀국했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고, 1886년 다시 워싱턴DC로 망명했다. 그는 1887년 메릴랜드 농대에 입학, 4년 후 졸업했다. 졸업 후 귀국하지 못하고 연방 농무부에 취업해 연구 활동을 하던 그는 1891년 10월 숙소로 돌아가다 메릴랜드 대학 인근에서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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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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