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내 자취방에서의 첫 기억은 맨바닥에 깔려 있는 매트리스에 앉아 펑펑 울며 엄마에게 전화하던 것이다. 마냥 들뜬 마음으로 지나간 1학년의 마무리는 버클리에서 내 자취방 구하기였다. 매일같이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고 하우스 투어를 다니며 경제적 사정에 맞는 월세를 계산하는 것은 너무 낯선 ‘어른’의 영역이었다. 함께 살 하우스 메이트들과 어떤 식으로 월세를 나눌 지 결정하는,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한 대화도 나눠야 했다. 물론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내 방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이 즐거웠다.
14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 때문이었을까, 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 자취집에 들어선 입주날, 나는 시작부터 지쳐 있었다. 전 주인에게 산 침대는 내 방이 아닌 다른 방에 있었으며, 침대가 방문보다 커서 옮길 수 없었고, 실수로 침대 아래 서랍을 밟아 부러뜨렸다. 창문이나 커튼 여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았고, 창문을 끝까지 닫지도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3층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준 남자친구에게 괜히 성질을 부렸다. 가버리라고, 필요없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댔다. 남자친구가 눈치를 보며 집으로 돌아간 후, 찝찝한 마음에 샤워를 했다. 당시 샤워헤드로 물이 나오게 하는 레버도 사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거지같은 집을 골랐다고 미친듯이 욕을 내뱉었다. 난방 기계도 켤 줄 몰라 벌벌 떨며 매트리스라도 겨우 내 방으로 옮긴 후 앉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서러워 죽겠어.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진짜.”
이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부모님 곁을 떠나서 시작하는 독립적인 생활은 감수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일에 겁을 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나는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훑어 저녁 메뉴를 구상하고, 다이소 정전기 청소포로 손쉽게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바닥에 흘리면 지나치게 끈적한 콜라 대신 다이어트 콜라를 사는 정도의 지혜로운 자취 경력 1년차가 됐다. 이런 것들을 회상할 여유도 생긴 나는 조금 더 성장한 어른이 됐다고 믿고 싶다. 첫 자취 성장통은 생각보다 아팠지만, 그때의 나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앞으로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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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씨는 UC버클리에서 미디어학과와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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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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