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위기관리는 달랐다. 왕위에 오르자 선왕 아하스가 섬기던 우상과 산당부터 없앴다. 자신의 생활을 깨끗하게 하고 정치를 투명하게 했다. 히스기야 14년 때다.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가 185,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때 히스기야의 위기관리는 돋보였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처럼 강대국에 손 내미는 외교정책을 구사하지 않았다. 이사야의 충고를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와 백성들에게 중보 기도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겸손과 담대한 믿음을 바라보고 하나로 뭉쳐 단합했다.” (구약성경 ‘이사야 36-37장’ 중에서‘)
1940년 9월 15일은 영국에게 위기였다. 히틀러가 런던 대공습을 예고한 날이다. 처칠은 공군 사령관에게 물었다. “우리 공군에게 뜰 수 있는 비행기가 몇 대가 있소?” 공군 사령관이 대답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처칠은 “그럼 내가 졌단 말인가?” 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떨구었다.
하지만 처칠은 포기하지 않았다. 중보기도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리스 하월스를 급히 만났다. 처칠은 하월스에게 전 영국교회가 참여하는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하월스의 중보기도의 네트웍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교회마다 기도하는 성도들로 가득 찼다.
몇 시간이 흘러 상황실에서 보고가 왔다. “놀랍고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구름 떼처럼 몰려오던 나치 공군기들이 갑자기 기수를 돌려 퇴각하고 있습니다. 퇴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로드 도우딩 공군사령관은 회고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중보기도 후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지파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남유다의 13대 왕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2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번 위기를 만났지만 선지자 이사야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렸다.
지금 대한민국도 아하스-히스기야시대의 남유다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다. 등거리 외교로 아슬아슬하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히스기야와 처칠의 위기관리 비밀은 신앙으로 지도자와 백성을 하나로 묶는 중보기도 운동에 있었다. 당신은 리더인가. 성경적 리더십의 뿌리를 찾아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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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 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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