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봄은 DC에 위치한 국립
수목원 핏빛 붉은 동백이 붉은 숨을
토해내며 시작된다.
동짓달 긴 긴 밤 희득이는 눈발 사이로 붉은 숨결을 토해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툭툭 붉은 그리움이
하나둘 억센 잎새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붉은 별이 되어 어두운 겨울을 밝히기 시작하면 비로소 워싱턴의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삼월이 되어 자진 머리로 되치기하며 더욱 검붉어져 굵은 날숨을 토하면
영락없는 봄인 것이다. 매조화인
동백은 나비도 벌도 잠이 든 겨울부터 서둘러 봄을 재촉하며 붉은색 요염함으로
동박새를 유혹하여 수분을 영위한다.
그랬다. 봄이 무르익은 백련사 동백
숲길은 온통 시퍼렇게 살아있는 붉은 주검들이 길을 가득 메워 차마 그 위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기도 미안할만큼
애잔하기만 하였다.
아침 해가 빨간 불덩이가 되어
강진만에 붉은 피를 토하면 동백
숲길은 온통 붉은 각혈로 지면을
덮어 더욱 붉어진다. 동백꽃은 붉은
치마 속에 정인이 주고 간 노란 금반지 하나 부여잡고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가 되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가 되고 장렬히 목을 내놓은
사육신이 된다.
다산(정약용)은 봄마다 이 길을 걸어
백련사 초의선사를 만나러 갈 때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인 김영랑이 현대 무용가의 전설
최승희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그만 목을 맨 것도 동백나무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네 가슴
깊숙이 응어리져 올라오는 동백꽃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시골에선 결혼식을 보통 이른 봄에 많이 한다. 삭막한 초봄이라
마땅히 화환을 구할 길이 없어 볏짚을 묶어 세우고 그 위에 갓 피어난
동백꽃을 꺾어 와 꽂으면 정말 멋진
화환이 된다.
거기다 오색 테이프를 두르면 세상
어느 화환보다 멋진 낭만적인
결혼식장이 되는 것이다.
하여 워싱턴의 봄은 김유정의 동백꽃이 노란 생강나무꽃이 되어 희망의
동백꽃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마냥 그리움에 지쳐 빨갛게
멍이 든 애달픈 동백 아가씨가 있다면 차라리 차라리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다시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나도 좋으리.
<
글·사진/ 이요한(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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