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보로스는 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뱀의 이름이다. 이 뱀은 자기의 꼬리를 물어 먹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우로보로스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 말로 ‘꼬리’를 뜻하는 ‘우라’와 ‘먹는다’는 뜻의 ‘보로스’의 합성어다.
이집트에도 이와 비슷한 전설적인 동물이 있다. 메헨 신의 현신으로 알려진 이 동물은 기원전 14세기 투탄카문 무덤에서 나온 ‘지옥의 전설서’라는 책에 묘사돼 있다. 북유럽에도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요르문간드라는 뱀의 전설이 있다.
이런 뱀의 모습은 전설과 신화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업계에도 존재한다. 상호 출자와 순환 출자라는 것이 그것이다. 상호 출자는 A라는 회사가 B사 주식을 소유하고 B사는 다시 A사 주식을 사는 식으로 서로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이다.
A사는 B사 주식을, B 사는 C사 주식을, C사는 다시 A사 주식을 갖는 순환 출자라는 것도 있다. 이렇게 하면 계열사를 얼마든지 늘려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들이 이런 방식으로 작은 자본으로 계열사들은 통제해 왔는데 이 방식은 한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계열사 전체의 문제로 커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대기업의 계열사 상호 출자와 신규 순환 출자는 금지돼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순환 투자라는 것으로 단지 상대방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기 회사 물건을 사게하는 방식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증시 호황으로 돈이 잘 돌거나 특정 산업에 붐이 일어날 때 잘 생긴다. 그 대표적인 예가 90년대 말 통신 장비 회사인 루슨트 테크놀로지다. 당시 인터넷 붐을 타고 통신 회사들이 마구 생겨나자 루슨트는 이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빌려주고 자기 회사 물건을 사게 했다.
손쉽게 돈을 얻은 이들 회사는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고 루슨트 매출은 급속히 늘어나 한동안은 모두 행복했으나 이들 회사의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줄줄이 문을 닫았다. 루슨트는 이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입고 2006년 프랑스 기업 알카텔에게 넘어 갔다 2016년 다시 노키아에게 팔린 후 이름조차 사라졌다.
그 후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비슷한일이 다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챗GPT 창시자인 오픈AI와 계약을 맺고 1천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엔비디아의 특수 칩을 사주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건 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AI계를 대표하는 오픈AI,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러클, 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스(AMD), 코어위브 등 6개 회사는 서로 투자하고 물건을 사주는 방식으로 얽혀 있다. 오픈 AI는 오러클로부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전산 능력을 5년간 사기로 했고 엔비디아 라이벌인 AMD는 오픈 AI를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자사 주식 10%를 주당 1센트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오픈 AI에게 주기로 했다.
이들간의 관계는 도표로 그려도 잘 이해가 안될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모든 게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한 곳이 무너지면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로 사슬에 묶인 조조의 배처럼 한꺼번에 날아갈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과 AI 버블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에 별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이것이 버블인지 아닌지가 불명확한데다 버블이라 하더라도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은 모두 AI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여기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 ‘FOMO’(fear of missing out)가 더 크다. 거기다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이라는 것도 있다. 주식이 아무리 비싸도 내가 산 것보다 비싸게 사줄 바보는 언제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이유로 버블은 쉽게 터지지 않는다. 역시 저널에 따르면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3월 필립&드루 펀드 매니지먼트의 총책임자이던 토니 다이는 해임됐다. 일찍부터 닷컴 버블의 위험을 감지하고 관련 주식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가 경쟁사보다 수익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이 펀드는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가 해고되던 달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다른 펀드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지만 그 펀드는 건재했다.
닷컴 버블은 앨런 그린스팬이 그 위험을 경고한 후에도 4년을 더 갔고 지금은 AI 버블 초기 단계라는 설도 유력하다. 그러나 모든 버블은 터지기 전까지는 계속 부풀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버블의 팽창과 붕괴는 그래서 끝없이 되풀이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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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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