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개념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의미가 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만 보아도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줍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판사의 성향과 해석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내려지고, 종교나 도덕은 때로 사람들의 마음에 오히려 더 큰 죄책감을 안기기도 합니다. 종교인의 위선은 법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개인의 신뢰와 양심을 무너뜨리는, 가장 교묘한 형태의 죄악이 되기도 합니다.
안락사나 임종을 돕는 행위가 살인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통을 덜어주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합리화를 얻습니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다양한 행위들이 죄로 취급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군인이 영웅으로 칭송받고, 국가를 위한 암살이 정의로운 행위로 미화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영웅이, 다른 곳에서는 살인자로 불리는 모순은 결국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우리에게는 전쟁 도발자이자 살인자로 보이지만 러시아 국민에게는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받습니다. 같은 지구에서 일어난 같은 행위일지라도 판단은 이렇게 다르게 나타납니다.
역사를 보아도 이런 모순은 반복됩니다. 미국의 개척 시기,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총을 든 이들은 선량한 인디언을 학살하고 그들을 보호구역에 몰아넣었습니다. 거의 멸종에 이르게 한 뒤, 자신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신에게 기도하며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선과 악이 얼마나 쉽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보다 더 잔인하고 파렴치한 행위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면서 평화롭게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는 식량에 불과하지만 홍수에 휩쓸린 소는 목숨 걸고 구출대상이 됩니다. 도살 과정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한 법이 존재하고 이를 감시하는 단체도 있지만, 그 소를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는 유명세를 얻습니다. 이 상반된 기준들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판단과 욕망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법과 사회의 판단도 흔들립니다. 변호사와 검사들은 논리를 겨루고, 판사는 그 논리에 따라 판결을 내립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종종 배제됩니다. 고위층의 옹호 발언은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아무리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해도 위선과 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 힘을 잃습니다.
기혼자의 외도를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경험”이라는 말로 미화하는 것은 평범한 도덕관념조차 흔들어 놓습니다. ‘내로남불’은 이제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권력과 논리에 의해 보통 사람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성직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이 언론에 비치고, 국경과 교리가 달라도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갈등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종교 전쟁일 뿐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모순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아마도 완벽한 진리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묵묵히 선함을 지키며 살아간 이들을 따르는 것이 더 큰 평온을 줄지 모릅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약이 되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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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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