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쿄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동화 ‘강아지 똥’이 대상을 받았다는 신문기사가 보도됐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기술이야 세계적인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는 터. 그러나 아무리 그림이 좋고 기술이 뛰어나다해도 영화의 내용 자체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점에서 ‘강아지 똥’의 대상 수상은 원작의 내용이 보편적인 감동을 담고 있는데 힘 입은바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강아지 똥’은 동화 작가 권정생의 작품이다.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강아지 똥 조차 민들레 꽃을 피워내는 자기만의 역할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사람은 누구나 존재 가치가 있음을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동화이다.
권정생은 오랜 작품 활동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이다. 강아지 똥만해도 지난 1969년에 나왔던 작품이다.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명예와 담을 쌓은 작가의 고집과 주변머리 없음 때문인지 그의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져 왔다. ‘강아지 똥’은 지난 96년 새로운 편집과 그림을 더해 다시 출간됐는데 지금은 한달에 수천권씩 팔리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 잡았다.
작가 권정생의 이름을 일반에 보다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던 또다른 책은 ‘몽실언니’다. 지난 84년 초판 발행이후 매년 2만~3만권씩 꾸준히 팔린 이 책에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고도 슬픈, 절름발이 몽실이의 삶이 그려져 있다. 인기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한국 아동문학의 대표작으로까지 꼽힐 정도로 평단의 높은 평을 받은 작품이다.
권정생의 작가로서의 역량은 그가 받은 많은 문학상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상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어떤 때는 거부하기도 할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지 않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욕심을 완전히 놓아 버린 듯한.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욕심을 체화 시킬만한 변변한 기회조차 없었던 그의 궁상맞은 삶속에서 저절로 형성된 듯하다.
37년생인 권정생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한때 걸인 생활도 하고 교회 종지기 일도 한 그는 경상도 시골에 묻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가난한 작가이다.
그는 동화라는 도구를 통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풀어 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그의 동화는 대부분 몽환이 아닌 현실속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권정생이라는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그가 96년 펴낸 산문집 ‘우리들의 하나님’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누런 재생지에 보잘 것 없는 표지 한 장을 달랑 입힌 초라한 장정이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책이다. 화려한 장정에 속빈 강정처럼 형편없는 내용의 책들이 얼마나 많던가. 사람 겉모습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듯 책 또한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의 하나님’에는 작가가 사는 마을과 이웃들을 통해 바라본 종교와 환경, 그리고 농촌문제등에 관한 글 30여편이 실려 있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추억과 눈물과 따스함이 있다.
초등학교가 정규교육의 전부인 이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지혜는 결코 제도권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고 자라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나온지도 오래됐고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방에서 바로 구하기는 힘들 듯. 그렇지만 깨끗한 마음과 만나보고 싶다면 주문해서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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