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에는 등신, 외교에는 귀신’-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관련해 한동안 유행한 말이다.
장기집권을 하려다가 결국 4.19 혁명으로 물러났다. 내정에는 등신이란 말은 아마 이래서 나온 것 같다.
이처럼 일부에서 ‘실패한 독재자’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이지만 외교업적은 그런 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꼽히는 업적이 한미 안보동맹의 성사다.
이 박사는 사실 미국으로부터 여간 푸대접을 받은 게 아니다. 독재정치를 한 탓이다. 그러나 갓 독립한 약소국가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6.25동란 중 내내 미군의 괄시를 받았다. 당시 대통령이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내는 전문(電文)도 미군의 신세를 져야 할 정도의 형편이었으니까.
이런 처지의 이 박사가 휴전회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엉뚱한 주장이지만 당시 아이젠하워 미 행정부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설득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렇다면…’ 하고 이 박사는 제안을 했다.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약을 끌어낸 것.
미국으로 하여금 진땀을 빼게 하고 얻어낸 게 한미 방위조약이다. 내심을 숨기고 미국을 밀어붙인 결과 얻어낸 이 박사의 외교 업적이다.
1953년 10월1일 당시 변영태 한국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은 6.25발발 원인의 하나가 된 미국측의 일방적 철군 내지 감군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한미동맹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미국을 잘 알고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한 이 박사의 노련한 외교 솜씨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나서 반세기. 한미 동맹관계가 다시 양국 외교문제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상황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빨간 불이 켜져서다. 뭐랄까. 양국간에 갈등과 오해가 쌓여진 결과다.
"미국 조야의 의구심을 해소하겠다." 미국 방문 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일성에서도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한번의 만남으로 냉랭한 분위기를 일소하고 동맹관계의 정상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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