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이 어려서는 나를 무척 따랐다. 두 직장을 뛰느라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 내게 틈만 나면 안겨 왔다. 딸을 바랬기 때문인지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겼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가족의 상상을 뛰어넘어 당당한 체격의 풋볼 선수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아이들 방 앞에 커다란 물체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십자가를 향해 작은아이가 기도하는 중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물어 보았다. “어제 밤에는 무슨 기도를 했니?”
아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응 여드름 없애 달라고.” 소망은 좀 유치한지 몰라도 확신을 가진 신앙심을 확인한 이상 그 이후 아이의 어떤 행동도 믿을 수가 있었다.
제 몫으로 차 살 돈을 마련해 두었다고 해도 대학으로 가면서 집에서 쓰던 고물 차를 몰고 갔다. 직장 다닐 때는 그 돈을 형에게 주어 새차를 사게 하고 자기는 형의 헌차를 타고 다녔다. 물론 지금은 좋은 차를 사서 제가 월부로 갚아 나간다.
정치학과와 사회사업과를 전공한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소망하던 경찰관이 된 것도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심성과 무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가 극구 반대 할 때 아이가 마지막 한말에 함축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남을 도우며 세상을 살라고 하셨는데... 큰 도시의 시장들도 경찰관 출신이야.”
작은아들이 새로 지은 집을 사서 나간 뒤 아이가 쓰던 방은 내차지가 되었다. 아래층 어두운 방에서 19년 동안 책 읽고 원고 쓰다가, 남향 창문이 있는 그 방으로 옮겨와 보니 아이들이 밝은 곳에서 밝게 자라 새로운 둥지로 떠난 게 정말 다행스러웠다.
창 밖으로 나무와 집들, 그것들이 세월 강 따라 흐르는 것으로 알았는데 흐르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풍경은 “당신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연민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어딜 나갔다가 그 방에 들어 올 때는 내가 강원도 군대에서 받아본 어머님 편지 생각이 난다. “주말에 다녀간 건너 방은 너의 체취가 날아갈 가봐 차마 열어 놀 수가 없구나.”
아이는 곧 장가를 간다. 모든 걸 저희들이 준비하고 부모는 몸만 가면 된다. 일년 전에 예약한 산 속 야외 식장에는 양가 친척들만 초대한다. 그나마 피로연에 내가 초대할 몫은 제가 어려서부터 지켜본 아빠의 선배 몇 분이다.
큰아이 때도 그렇게 해주길 바랬는데 내 친지들을 엄청 불러놓은 처사가, 더욱이 빗속에 찾아온 분들께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오래 전 나의 결혼식 날, 명동성당이 텅 빌까봐 이리저리 뛰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 계신 아버지 대신 초청인이 되어 주신 아버지 대학 동창 분들의 고마움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 날 에는 놈을 대신해서 이제는 예비 며느리가 내게 포옹해주고 떠나갔다. 이제 아이는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친지의 딸이 시집 갈 때도 선배의 아들이 장가 갈 때도 덕담 대신 읽어준 시‘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이정하)을 아들에게도 들려준다.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겠다는 뜻이다.
이재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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