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했던 USC 동료들 중에는 은퇴할 나이가 되기 한참 전인 40~50대 초반에 월급도 괜찮고 직급도 높은 디렉터나 매니저의 자리를 과감히 사퇴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재설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은퇴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좋은 자리이지만 그런 안정된 자리보다는 자신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나 혹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며 갑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최근 급등한 부동산을 정리해서 세계여행을 떠난 동료도 있고 또 LA보다 주거비가 저렴한 타주로 이사해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며 다음 직장을 결정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교수들은 평생교수직(Tenure)을 받으면 은퇴할 때까지 안전한 직장인 경우가 많지만 대학 행정직의 경우엔 대개가 3~5년 사이에 직장을 바꾼다. USC 등 대학뿐 아니라 미국기업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노동청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일생동안 평균 10번 정도 직장을 옮긴다고 한다.
이렇게 직장을 그만두는 대부분의 동료들은 컨설턴트와 같은 프리랜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지난 10여년간 계속되어온 40~50대의 원하지 않는 명예퇴직과는 매우 상이한 직장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40대부터 이제 60세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들이 미국의 직장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많은 연구조사에서 나타났었다.
최근 뉴스위크의 미국 직장선택 트렌드에 관한 기사엔 2007년 신년계획으로 대대적 직종 변경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위한 조언이 실려 있다. 사무실의 행정보조원으로 몇 십년 동안 일한 50대 여성이 가수와 배우지망생으로의 도전한 경우나, 30대까지 건강관련 대기업에서 많은 월급과 높은 직급으로 승승장구하던 여성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시작했던 요가의 전문 강사로 전업한 예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점점 대기업에서의 승진과 많은 월급이 최고의 목표로 지향되던 직장 문화의 트렌드에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무조건 반겼을 승진도 자신이 현재의 위치에서 즐기고 있는 일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개인 시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승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등의 새로운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우리 부서에는 각자의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3명의 40~50대 남자 매니저들을 새로 채용했는데 이전에 일했던 직장보다 비교적 적은 월급과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도 불구하고 USC라는 새로운 근무 환경에 매력을 느껴 이직을 결정했다고 한다.
Careerbuilder.com이 6,169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5명중 4명 이상이 그들이 꿈꾸던 직장에서 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9%의 응답자가 꿈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즐거움(Fun)’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했으며 그 뒤를 이어서 17%가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 꿈의 직업이라고 답변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월급이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지만 12%에 불과한 응답자들만이 많은 월급이 좋은 직장을 결정한다고 답변했다. 물론 이 조사 결과를 통해 응답자들의 대부분이 ‘불행하다’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항상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USC 2학년에 재학중인 딸 제시카도 아직 무슨 전공을 정해야 하는지 선택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하며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경영학이나 법률학 전공을 권했겠지만 이제는 본인이 가장 원하는 것을 정해서 해보고 또 그것이 맞지 않으면 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주는 정도의 조언으로 끝내기로 했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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