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전이 필라델피아 미술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오는 2월 1일부터 5월 6일까지 개최되는 이번 빈센트 반 고흐 작품전에서는 1886년 파리에 도착해서부터 1890년 죽음을 맞기까지 예술가적 열정이 넘치던 시기의 작품들로 전 세계에 분산 보관중인 대표작 40여 점믈 엄선, 전시한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버리지 못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들판에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눈 지 이틀 만인 1890년 7월29일 동생 테오도로스의 옆에서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눈을 감은 뒤에야 인상주의의 거장,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그림을 통해 하나님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체계적인 그림 공부는 하지 못했다. 900여점의 그림과 1100여점의 습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감행하기 전인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모두 탄생했다. 20대 후반에야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정신적 불안이 그를 지배했다.
사랑하던 여인과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1885년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큰 상실감에 빠진다. 광적인 신앙을 갖기도 했고 자기 학대를 일삼기도 했다. 아버지 사망 이후 프랑스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모네, 드가, 피사로 등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접한 것은 그의 작품활동에 중요한 계기가 된다. 폴 고갱과 인연을 맺은 것도 파리에서다. 그러나 술과 담배, 정신질환으로 몸과 마음은 쇠약해져만 갔다.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의 침실’ ‘밤의 카페 풍경’ ‘별이 빛나는 밤’ 등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파리 이후’ 작업실을 마련했던 아를에서 탄생했다. 피폐한 삶과 달리 작품은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오늘날 반 고흐에게서 느끼는 전형적인 화법들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 들판과 길은 평평하게 표현됐고 색채는 더욱 강렬해졌다. 붉은색과 초록색, 푸른색과 오렌지색 등 보색적인 대비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더욱 왕성해진 작품활동과 별개로 그의 정신질환은 더욱 심각해졌다. 고갱과 큰 논쟁을 벌인 뒤 관계가 멀어지자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 한 창녀에게 건네며 “이 오브제를 잘 보관하라”고 말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웃주민들은 그를 ‘빨간 머리의 정신병자’라고 불렀고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반 고흐는 환각과 망상에 시달렸고 1889년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갔고 결국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총을 겨누고 말았다. 죽은 지 11년 뒤인 1901년 3월 파리에서 반 고흐의 그림 71점이 전시된 이후에야 그의 작품은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에 그가 미친 영향력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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