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약세를 면치 못한 지난 몇 년간 감정(appraisal)이 주택 구입에 걸림돌로 작용한 예가 적지 않다. 감정이란 주택 구입자가 은행에 융자를 신청하면, 은행 측에서 그 집이 과연 계약 액수 혹은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은행은 융자 가치가 적은 집에 돈을 빌려줬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 손실을 크게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정에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이 있는 사람, 즉 감정인(appraiser)에게 의뢰하여 융자 대상 주택의 시장 가치를 알아 보고 나서 융자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집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보니, 감정인들도 책임을 피하고자 가급적 감정가를 낮춰 내는 경향이 있었다. 이 와중에 감정가가 계약 금액 이하로 나오는 때에는 은행이 융자를 거부하거나, 융자 가능 액수를 줄여 결과적으로 주택 구입자가 매매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주택 구입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감정 조건부 계약(appraisal contingency)이다. 오늘은 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감정 조건부 계약이란 말 그대로, 주택 매매 계약을 하되, 감정가가 계약 금액 미만으로 나오면 구입자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건을 붙인 계약이다. 이 조건에 해당되면, 구입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다음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감정가를 이유로 그냥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다. 구입자 스스로 그 집의 구매 계약을 크게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경우라면 감정 결과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한 일일 수 있다. 애초에 감정 결과를 조건으로 하여 체결한 계약이므로, 계약을 취소하면 모든 계약금은 돌려받게 된다. 다만 구입자가 그 사이 계약 이행과 관련하여 지출한 비용, 예컨대, 감정료, 주택/터마이트/라돈 검사료 등은 돌려 받을 길이 없다.
둘째는 가격에 대해 집을 파는 사람과 재협상을 하는 것이다. 감정 결과가 계약 금액보다 낮게 나와 융자를 받는데 차질이 생기게 된 만큼, 가격을 그만큼 낮춰주지 않으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 그러니 매매가 완결되기를 원하면, 가격을 조정해주라 하고 집을 파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십중팔구는 집을 파는 사람이 감정 결과를 수용하여 가격 조정 요구에 응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계약을 취소하기보다는 이러한 가격 조정의 길을 택한다.
감정가가 계약 금액 미만으로 나왔는데, 집을 파는 사람이 가격 조정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이라면 어떻게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가와 계약 금액 간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고, 계약을 취소하기에는 그 집에 미련이 너무 많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다른 전문가의 소견을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다른 소견에 의해 계약 금액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그리고 융자가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다소 줄어들더라도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할 실익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집은 어느 정도 주관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집인 것이다.
사실 감정인이 내는 주택 감정가는 상당 부분 몰가치적이고, 평균적이다. 또한 항상 신뢰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감정 대상 주택 인근에서 최근에 팔린 다른 주택들의 거래가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주택의 상태나 규모나 입지 등의 측면에서 가격에 반영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가감하여 내놓는 것이 감정인의 감정가이다. 다행히 가까운 이웃에 비슷한 집들로 최근에 거래된 기록이 풍부하면 상당히 신빙성 있는 감정가가 나와주겠지만, 딱히 그런 기록이 없거나 부족하면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려운 다른 주택들을 참고할 수 밖에 없어 감정 결과도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 결과를 그냥 수용하기보다는 주변 사정에 밝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감정 결과의 검토 및 평가를 받아봄으로써 계약 금액의 타당성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 2의 감정인을 통한 재 감정도 한 방법이지만, 여기에는 비용이 드는 만치 늘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융자 조건부(mortgage contingency) 매매 계약을 체결한 경우, 따로 감정을 조건으로 하지 않더라도 대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융자 조건에 융자 액수가 들어가는데, 감정가가 낮게 나오면 액수가 줄어 결국은 계약 이행이 어려운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감정 조건을 넣는 것이 좋다. 감정 조건부 계약은 은행 융자가 끼지 않은 거래의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하상묵 (610-348-9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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